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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과도하게 기회비용을 따지지 않았으면 해요”젊은 과학자상을 5번 수상한 박사과정생 지요셉(경영식품 01) 씨를 만나다
김문구 기자  |  kimmg@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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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4  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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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요셉씨가 연구실에 있는 현미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생명과학부 홀잡펠 교수와 신현길 교수 연구실의 지요셉 박사과정생은 남들은 한 번이라도 받기 힘든 *젊은 과학자 상(Young Scientist Award)을 5번이나 수상했다. IPC(International Scientific Conference on Probiotics and Prebiotics)로부터 김치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쥐에게 섭취하게 했을 때 쥐의 *장내균총이 변하고 살이 빠지는 결과를 연구한 논문으로 상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이와 관련된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낙엽이 지는 수요일 오후, 느헤미야 3층 305호로 찾아갔다. “점심 먹으면서 할까? 또랑 가자” 지요셉 박사과정생이 식사하면서 인터뷰를 할 것을 제안했다. 사실은 지난 여름방학 동안 기자는 이 연구실에서 인턴을 했었다. 그동안 지요셉 박사과정생을 많이 마주쳤지만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라고는 직감하지 못했다. 그는 항상 털털한 웃음에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온화한 성격을 가졌다. 특이하다고 할만한 것이라고는 경영을 전공했지만, 생명과학분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연구, 멘토, 학교, 신앙…’ 농구장 옆 벤치에서 나눈 대화는 따스한 가을 햇볕에 더 담백하게 느껴졌다.

Q 젊은 과학자상은 어떻게 받게 됐나요?
젊은 과학자상을 처음 탄 때가 2011년이었어요. 석사과정 2년 차였을 때 홀잡펠 교수님이 장내균총 관련 연구주제를 학회에 가져가서 발표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그때 학회에서 발표하고 상을 받았어요. 정말 기적이었죠. 그곳에서 같이 후보로 올라간 사람들이 일본 동경대학교 산하 연구소의 신지 후쿠다(Shinji hukuda)랑 네덜란드 와게닝겐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의 반더빌(van der wiel)이었어요.
신지 후쿠다는 발표한 내용이 그다음 해에 네이처에 출판돼 교토대 교수로 갔고 반더빌은 이미 그때 조교수였어요. 고작 석사과정 2년 차였던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기회를 주셔서 할 수 있었던 것이 맞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겁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Q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아버지께서 하신 조언의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께서는 일로 자기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많고 만나기도 쉽지만 일도 성공하고 인성 또한 겸비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고 하셨어요. 그런 사람을 멘토로 삼고, 그 사람의 생활방식을 몇 년이라도 배워본다면 평생의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주셨죠. 그래서 홀잡펠 교수님을 멘토로 삼아 석사과정을 시작했어요. 홀잡펠 교수님은 미생물 분야에서는 전설로 여겨지세요. 우리 연구실이 파트너로 삼고 있는 회사 관계자 분 중 박사과정을 하면서 교수님의 논문만 보고 공부를 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지요. 교수님께서 쓰신 논문이 300여 편이 넘고 저서도 60여 권이 넘어요. 그런데도 겸손하시고 신앙적으로도 올곧으세요. 그런 점들을 제가 본받고 싶었어요.

Q 한동대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요?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져서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못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후 검정고시를 치고 토플을 보고 고려대와 경희대, 외대, 한동대 이렇게 원서를 썼어요. 하지만 고려대와 외대는 영어영문학과만 갈 수 있었고 경희대는 한의대에 원서를 냈는데 논술을 망쳤죠. 지금도 기억나요. “이진법과 음양이론을 이용하여 태극기를 서술하여라.” 그래서 그냥 백지를 내고 나왔어요. 마침 어머니께서 갈대상자에 기부를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한동대에 진학하길 원하셨지요. 11월 15일에 한동대 합격통보를 받았어요. 그 날이 어머니 생신이셨죠. 한동대로 진학하게 되자 무척 좋아하셨지요.

Q 처음 입학했을 때와 달라진 점은요?
기숙사에 인터넷이 있다는 거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기숙사에 인터넷이 없었어요. 01학번 때 인터넷을 쓰려면 자대 4층(현동홀)의 전산실에 가야 했어요. 줄이 엄청나게 길었지요. 밤에는 한 방마다 10명씩 모여서 수다 떨고 얼굴 보면서 놀아서 사람들끼리 매우 친했어요. 그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휴대전화가 있기는 했는데 전화와 문자만 되었어요. 그래서 기숙사에서 방 전화로 여자 방에 무작위로 전화해서 통화하고 이야기하고 놀았죠. 수강신청도 전산실에서 줄을 서서 했지요. 그때는 빨리 클릭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새벽에 빨리 일어나서 전산실 앞에 줄을 서는데 얼마나 앞에 서는지가 문제였어요.
건물도 많이 생겼고 도서관도 생겼네요. 제가 1호관(창조관)이었는데 책상이 방마다 하나밖에 없었어요. 공부할 곳이 없어서 공대 4층(느헤미야)에 3분의 1 정도를 나눠서 책상 놓고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지요.

Q 한동대에서 기억에 남는 활동은요?
한동대에서 3학년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가 현재 제 아내에요. 연애를 7년하고 지금은 결혼해서 애가 둘이에요. 네 살, 한 살. 동아리는 ‘한씨네’를 했었어요. 영화동아리인데 일 년에 영화도 두 편씩 찍었어요. CF도 많이 찍었지요. 육거리에 있는 식당들을 대상으로 CF를 제작해서 영화 상영 전에 광고했지요. 한 학기에 30만 원이나 40만 원정도 받아서 동아리 운영하고 영화도 찍고요. 매주 학관 101호에서 영화를 상영했어요. 포항에는 그 당시 멀티플랙스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왔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고 영화제(학사 경고 영화제)>. 기말고사를 이미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서 영화를 상영했어요.

Q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교수님은요?
<시민 생활과 법>이요. 지금은 학교에 계시지 않는 교수님인데, <칼을 쳐서 보습을>이라는 책을 쓰신 김두식 교수님이 가르친 수업이에요. 이 수업으로 법학에 흥미를 느껴서 법학 쪽 수업도 몇 개 듣기도 했어요. 근데 재미가 없었어요. 손화철 교수님 <기독교 세계관> 수업도 좋았어요.
전공 쪽 수업은 식품과 건강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때는 생명식품공학부였지요. 그리고 유기선 교수님 경영학개론과 김재홍 교수님 미시경제학도 재미있었던 수업이었죠.

Q 공부를 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요?
학부 공부할 때 어려웠던 점은 개인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요. 그룹 과제는 모든 것을 그룹 중심으로 풀어나가서 상당히 논리적이고 일반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지만 독특한 결과는 나오기 힘들어요. 창조적인 생각은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요구돼요. 낭비하는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번뜩이는 생각을 내놓기에 그룹 과제는 한계가 많지요.
논문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논리적인 논문은 많아요. 그러나 그 속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오는지가 중요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향신료 같아요. 참신한 아이디어를 적재적소에 향신료와 같이 섞어야 연구가 재미있어지고 돋보여지는 거에요. 사람들끼리 동기부여도 되고요.

Q 한동대에서 얻은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나요?
생명과학부의 세미나가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연구한 내용을 영어로 자유롭게 다른 나라 과학자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이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와 같은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죠.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 생명정보과학(Bioinfomatics)을 배우고 있는데, 예전에 IT에서 공부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전산 배경지식이 많이 도움되었죠. 그리고 경영을 배우지 않았다면 기업체들과 같이 연구할 때 기업들의 요구를 파악하지 못했을 거에요. 경영경제를 공부했기 때문에 거래할 때 어떤 제안을 해야 하는지 기업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어요. 자기 분야에서 몰두해서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해요. 연구하다 보면 경영을 생각하는 사람, 연구를 생각하는 사람, 과학적 지식만을 생각하는 사람 등이 있는데 저의 경우 얕지만 넓게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는 사실이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지요.

Q 힘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힘들 때는 기도보다는 운동해요. 힘들 때 기도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다윗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자신의 울분을 기도로 풀 수 있는 그런 경지는 아니고요. 화내면서 뛰거나 걸어요. 그러다가 안정이 좀 되면 기도도 하고요. 제 생각으로는 기도만이 답은 아닌 것 같아요. 기도로 다 풀면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기도로 다 푸는 것은 신앙과 세상을 이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화가 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화낼만한 일을 겪는 것도 어찌 보면 신앙생활의 부분이지요. 이것을 세상의 방법으로 푸는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방법으로 푸는지가 갈림 선이 되겠지요.
요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대답을 잘 안 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럴 때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자식을 키우는 처지라서 하나님의 심정이 이해가 돼요. 자식이 어릴 때는 제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일일이 다 알려주고 간섭해야 가는데 첫째 애가 이제 머리가 크다 보니 간섭을 하지 않을 때 더 창조적이고 더 잘해나가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니 제가 더 뿌듯함을 느끼는 면도 있고요. 그런 단계인 것 같아요. 하나님도 그렇게 나를 계속 훈련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Q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과도하게 기회비용을 따지지 않았으면 해요. 손이 두 개밖에 없는데 앞에 사과, 바나나와 감이 있으면 두 개밖에 못 고르는 것이 맞지요. 나머지 하나는 기회비용이에요. 그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요. 선택했을 때 감은 감의 맛이 있고 사과는 사과의 맛이 있고 바나나는 바나나의 맛이 있어요. 놓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자신이 한 선택을 즐거워하고 그것만의 특색을 찾아보려고 할 때 진짜 자신이 되는 것 같아요. 남들이 하는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자신을 더 존중해줘야지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조건들을 두고 재어보지 않고 조금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바를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방법이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죠.

*한동대는 나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한동대에서 보낸 시간 내내 가장 많이 느낀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지키시고야 만다는 것이에요
*젊은 과학자상: 각 분야에서 높은 잠재력을 보이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을 독려하기 위한 상, IPC 학회에서는 매년 우승자에게 1,000€(한화 약 130만 원 상당)의 상금을 준다.

*장내균총: 장에 존재하는 세균들의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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