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성격과 특이한 종교관 때문일 것이다. 고3으로 돌아간다면 한동대에 다시 입학할 것이냐는 질문을 꽤나 받아봤다. 그 때마다 망설임 없는 긍정의 표시를 통해 상대방의 희한하다는 표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가끔 그 이유를 물으면 “온실 같아서”라고 답했다. 다른 대학과 달리 사회와 직접 맞닿아 있지 않아, 그 차가움이 곧바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 한동의 온기 덕에 세상의 한기를 잊은 채 천방지축 날뛰며 살 수 있었다.
그래서인가. 10월 31일 열린 ‘한동 20주년 포럼’에서 법학부 지승원 교수가 한 말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세상과 단절되면 될수록 우리가 모범이 전혀 안 되는 거에요. 그렇죠? 세상의 고뇌를 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모범이 될 수 있어요.” 어쩌면 우리는 한동 특유의 온기를 잃는 것이 두려워 세상의 고뇌를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고통 받는 이들을 초대하려 문을 여는 순간 세상의 한기가 왈칵, 들어올 수 있으니까. 온기를 잃기 싫은 우리는 이런 저런 명목을 내새웠다. ‘정치적이다’, ‘분열의 영이다’, ‘학생이면 공부에만 집중해라’, ‘대학에서 논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등등등.
그랬던 한동대가 간만에 문을 열었다. 초대된 손님은 세월호 유가족들. 200여 명의 학생이 손님을 맞이하러 함께 자리했다. 문이 열릴 때, 한기가 안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가 모이니 오히려 더 따뜻했다. 만남이 끝난 후, 손님들은 승합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고마워요”라고.
훈련병 때의 일이다. 2월의 연천은 추웠다. 개성보다 위에 있는 곳이니까. 영하 27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야외훈련은 고됐다. 추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교들은 드럼통 안의 모닥불이라도 쐴 수 있었지만 훈련병들은 발만 동동 굴러댔다. 그러던 녀석들이 눈치를 보며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결국 극지방의 펭귄 무리가 그러하듯, 시꺼멓고 냄새 나는 놈들 예닐곱이 껴안았다. ‘존나’ 따뜻하다며 함께 낄낄댔다.
껴안으면 너만 따뜻해지는 게 아니다. 나도 따뜻해진다. 한기에 떠는 이웃들이 사방 천지에 널려있다. 껴안으면 우리도, 그들도 좀 더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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