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향토유산 중양서원, 국가산업단지 조성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 중양서원 가는 길 입구에 중양서원 매몰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산을 등지고 서있는 중양서원의 모습이 보인다. 대문에는 중양서원 매몰 반대와 관련한 신문기사가 붙어있다.

지난 28일 오후, 마을을 약 220년 동안 지켜온 지역 향토문화유산 중양서원이 산단 조성 사업으로 인해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을 듣고, 서원이 있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 중산리 마을을 찾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찾아간 마을에서는 곧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금색으로 물든 벼들로 인해 가을의 풍성함이 느껴졌다. 마을 위쪽에 위치한 중양서원 또한 예스러운 나무들로 둘러싸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초입에 붙어있는 중양서원 철폐를 반대하는 현수막은 매몰 위기에 처한 중양서원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중양서원 매몰과 관련한 문제는 2009년 9월부터 꾸준히 논의돼왔지만, 중양서원을 관리하는 달성 서씨 문중과 포항 산단 조성 사업을 주관하는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간의 문제는 6년이 지난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달성 서씨 문중 “중양서원, 결코 매몰 될 수 없을 것”
‘포항 블루밸리’로 이름 붙여진 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LH공사가 시행자로 2019년까지 블루밸리 지역에 7,360억 원을 투입해 기계, 철강, 선박, IT 업종 중심의 단지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약 27조 원의 경제파급과 8만 7백 명의 고용유발을 목표로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초 공약이었던 국가산업단지를 포항에 지정하면서 LH공사가 포항 블루밸리 사업을 맡았다. 그러나 다른 국책 사업 등으로 인한 자금악화와 공업용수에 대한 국고지원 난항으로 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6년 5개월 동안 표류하던 포항 블루밸리사업은 관계기관과 협의 끝에 5억 원을 확보해 올해 10월, 약 188만 평 중 89만 평(295만 6,000㎡)에 달하는 1단계 지역부터 다시 착공이 시작됐다.
사업이 착수되면서 중양서원도 예외 없이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2009년 사업 진행 초기, 해당 지역은 동네 전체에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도배돼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수백 년을 지켜온 문화재와 마을을 훼손하며 산업단지를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LH공사 측의 입장은 ‘무조건 철거’라며 단호했다. 이 후, 사업이 지연되면서 보상기간이 길어지고 매년 감정평가를 새로 하게 돼 중양서원을 둘러싼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2008년, 달성 서씨 문중은 포항시에 탄원서를 제출해 당시 건설도시국장 박창섭 씨로부터 “최대한 보존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건설도시국장은 2010년 퇴직한 상태다. 포항시 측에서는 “우리는 행정적인 지원만을 할 뿐, 보상과 같은 문제는 전적으로 LH공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재 포항시는 중양서원 존폐와 관련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셈이다. 2012년, 중양서원 보존 사수대책위에서는 직접 LH공사를 방문했지만 “탄원서에 관한 답변은 포항시의 생각이다. 같은 비지정 문화재인 성동리 광남서원을 철거에서 제외할 때 뭐 하고 있었느냐”며 “보상 외의 다른 것은 어렵다”는 답변만을 받았다.
이러한 LH공사의 강경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문중에서는 서원 보존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진행해왔다. 그 결과, 올해 5월 LH공사 측과 중양서원 보존 위원회의 서정국 회장과 달성 서씨 문중 원로들이 모여 서원 존폐와 관련해 논의가 이뤄졌다. 또한, 6월에는 향토문화유산 중양서원 보존을 위한 시민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중과 공사 측의 입장은 크게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중양서원 보존 사수대책위 부회장 서정무(77) 씨는 “현 위치에서 보존은 하되, 산업단지 지역과 300m 정도 띄어서 공원화를 시키던지, 아니면 다른 곳에 이전해달라는 거죠. LH 측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탭니다. 어떻게 대처할지는 모르겠지만, 매몰이 결정된다면 소송이라도 불사할 겁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LH공사 측은 “문중에서는 보상을 해주려면 많이 해주던가 아니면 이동시키거나 현 상태로 해달라고 했어요. 보상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감정가를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평가 기관에 의뢰해 지급하는 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무조건 철거하는 것보다는 문중과의 회의결과 현재는 그대로 두는 쪽을 검토하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비지정 문화재지만 보존 가치는 충분히 있어
중양서원이 보존되지 못하고 철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중양서원이 ‘비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지정된 유산의 경우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다른 곳으로 이전 또는 복원 조처되지만, 중양서원처럼 비지정 향토유산은 국가나 지자체 등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중양서원은 비지정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보존가치가 지정문화재 못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중양서원은 1794년 남은(南隱)과 용은(傭隱)의 학문과 덕망을 추모하고자 건립됐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폐쇄됐으나 1947년 후손의 노력으로 복원한 뒤, 현재까지 지역 유림이 모여 강연을 하고, 매년 3월에는 향제를 올리는 전통문화 전승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서원에서는 조선 초기의 문신 남은 서섭을 주벽으로 서시복, 서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 중 세종시절 자헌대부 이조판서를 지내던 서섭 선생은 집현전 학사들과 뜻을 같이한 절의를 지킨 선비였고, 단종을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을 세종으로부터 받았다. 그 후 세조를 비판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중산리로 숨어들어 사육신의 순절을 기리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처럼 중양서원은 충절을 지키던 조상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오던 공간이다.
또한, 중양서원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양서원은 작은 규모지만 전통서원의 구성과 배치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특히 망월문의 팔각주좌와 강당의 원형주좌 형식에서는 중양서원 만의 독특한 특색이 드러나며, 마루 청판에서는 전통 목공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6월, 경북일보가 보도한 포항 YMCA 주최 ‘중양서원 보존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경주대 문화재학과 양희제 교수는 “포항시 남구청에서는 중양서원의 보존을 위해 국가 예산을 지원한 바 있고, 지역 향토자료로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는 이미 비지정 문화유산인 중양서원의 잠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 양 교수는 "중양서원이 현 위치에서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전승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일반인들도 이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해야 할 것"이라며 "문화유산이 지니는 공공성을 활용해 사회경제적 가치를 구현하는 보존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양서원, 매몰만이 답이 아니다
중양서원의 매몰을 막기 위한 법적 방편도 존재한다. 양희제 교수는 “신속한 대처를 위해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이하 신탁법)을 활용하는 방법도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화유산 보전 및 관리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개인, 단체, 기업 등으로부터 기부, 증여받거나 위탁받은 재산과 회비 등을 활용해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취득하고 보전, 관리한다. 신탁법은 이 법인 단체를 통해 관리와 활용을 맡김으로써 문화재 보존과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제공한다. 즉, 문중 측의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관리 위임 신청을 통해 비지정 문화재인 중양서원이 신탁법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중 측은 신탁법을 최후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포항 YMCA 사무총장 서병무 씨는“신탁법은 최후의 수단입니다. 문중 측에서는 아직 관리할 의지가 있습니다. 정말 지킬 수 없을 때 신탁법인에 문의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중양서원이 문화재적 가치는 지역사회의 역사 교육장으로 새롭게 쓰일 수 있다. 울산 구강서원의 복원은 중양서원과 비슷한 사례 중 하나이다. 울산지역 최초의 사립 고등교육기관이었던 구강서원은 포은(圃隱) 정몽주와 회제(晦齊) 이언적 선생의 위패를 봉안했던 곳으로, 숙종으로부터 서원으로 공식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 뒤 170여 년간 지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유학을 가르쳐오다 고종 때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됐다. 또한, 원래의 서원부지 터도 울산시가 아파트 건립 허가를 내줘 사라지고 말았었다. 하지만 그 뒤 향토 유학자들이 1990년부터 ‘구강서원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800평 정도의 부지를 매입해 울산시에 부지를 기부채납 했다. 이에 울산시는 본래의 터와는 다른 곳에 2003년에 서원 복원공사를 완성해, 구강서원은 현재 지역의 역사문화 체험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비지정 문화재의 색다른 활용 사례도 있다. 바로 등록문화재 제567호, 인천의 Cafe POT-R이다. Cafe POT-R은 과거 일제 강점기 동안 인천항에서 조운업을 하던 하역회사 사무소 겸 주택으로 쓰였던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로 19세기 건물 양식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우수한 비지정문화재인 건물을 개인이 매입하고 원형복원에 가까운 보수공사를 통해 현재 인천의 관광 문화재로 쓰이고 있다. 또한, 카페로 운영되어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됐을 뿐만 아니라, 인천의 관광지로서 근방 거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인천일보 칼럼을 통해 문화재의 공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는 “문화유산은 가꾸고 활용할 때 더욱 빛나며, 문화재 활용은 보존의 틀을 고도화하는 작업이다. 소중한 역사 문화 자원을 비지정 문화재라는 이유로 철거하고 문화지구를 해제하려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에서 벗어나 문화재를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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