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에 ‘한동대’를 치면 많은 연관검색어가 뜹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이라는 단어인데요. 네이버의 경우 ‘한동대’라는 단어의 연관검색어는 10월 13일 기준으로 첫 번째가 ‘이명박 기념관’, 두 번째가 ‘이명박 한동대’, 네 번째가 ‘한동대 이명박’입니다. 수험생 시절, 한동대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수백번씩 ‘한동대’를 검색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이 이명박이라는 단어가 저는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다름이 아닌 ‘맹목적 실용주의’에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돌풍처럼 불어닥친 실용주의라는 슬로건은 2008년 이명박 후보를 사상 최대 득표차로 당선시켰습니다. "이념 따위는 내다 버리자", "민주주의니 인권 보호니 언론 자유니 하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 것들이 옷과 밥과 집을 주지 않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갖고있던 생각에 대해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평한 말입니다. 747 공약으로 대표되는 실용주의는 우리들의 욕망을 자극했던 훌륭한 슬로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맹목적 실용주의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 5년이 거짓과 은폐, 비리와 폭력으로 점철된 것입니다. 집권 당시 이명박 정권이 행했던 부패는 최근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최측근은 정권 말 하나같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최근 “정치 관여는 인정되지만, 대선까지 개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자원 외교, 4대강 사업 등의 정책실패는 국정감사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위는 너무도 조용한 것 같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로 온갖 수사를 받다가 끝내 자살했던 것과 너무도 대조되는 풍경입니다. 그 누구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이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이명박 정권은 집권부터 물러날 때까지 맹목적 실용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맹목적 실용주의라는 새 복음은 한동대에도 점차 불어오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기념 도서관’은 이를 보여주는 단초입니다. 이념이니 가치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냐. 당장 인프라가 부족한 건 사실 아니냐. 대통령 기념 도서관을 랜드마크로 만들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한동대를 일류 대학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운운. 한동대에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단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러한 모습이 지지난 대선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합니다. 옳고 아름다운, 그래서 한편 초라하고 어려운 길을 이제는 버리고, 유용하고 효율적이며 세련된 쉬운 길로 한동대는 돌아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고 박완서 선생님은 세속화된 도시인들 속에서 살아가는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서울살이 속 욕망에 찌든 동창들의 모습과 어느새 그 속에 동화된 자신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외람되지만 선생님의 소설 속 마지막 문단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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