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깊은 절망을 경험한다. 작년 11월 1일 오후 10시경, 뉴스앤조이에 ‘한동대 총장 인선, 교수회 참가 불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는 총장 인선 과정, 정확히 말해 후보 심사에 교수 대표 참관 등을 요구한 교수회의 의사를 이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당시 총장 인선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던 학내 단체 모두 공통적으로 ‘총장 인선 과정 공개’와 ‘학내 구성원 참여’를 주장한 바 있다. 결국 교수회의 요구로 대표되는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거절한 것이다. 학생, 교수, 동문이 전부 나서도 요지부동인 이사회를 보며, 계란이 바위에 던져져 깨어질 때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1년이 지났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어떠한 학내 공지도 없이 ‘한동대 내 이명박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가시화’가 외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주어지지 않아 학내 구성원들이 이를 논의할 수조차 없었다는 것. 기념관이 정말 학내에 건립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 관계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해프닝인지 여부는 이차적인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기념관이 설립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가 반영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 후, 9월 30일 현재, 교내정보사이트 HISNet에는 ‘추후 도서관 건립과 관련하여 뜻을 결정해야 할 단계가 된다면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을 진행할 것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장순흥 총장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10대 프로젝트 또한 마찬가지다. 적어도 장 총장 재임기간 4년 동안, 학교는 10대 프로젝트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운영된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과의 논의가 있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사실 함께 목표를 세우는 과정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10대 프로젝트를 우리의 목표로 삼을 것인지 삼지 않을 것인지 택할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정해진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찾는 선택권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실제 개교 당시부터 있던 교수들 사이에서는, 20년 동안 한동의 가치를 고민해 온 교수들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정책을 시행해 불만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호 진행한 신뢰도 설문조사 결과, 한동대의 신뢰도 점수는 결코 낮지 않았다. 국회, 언론기관, 종교단체, 행정부, 심지어 시민단체조차 한동대보다 높은 신뢰도 점수를 기록하지 못했다. 학생, 학생기구, 교수에 대한 신뢰도 점수 또한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학교 리더십의 신뢰도 점수는 교직원 다음으로 낮았다. 낮은 신뢰도 점수를 매긴 학생 중 많은 이는 그 원인으로 투명하지 않은 행정처리와 의사결정구조를 꼽았다.
알고 있다. 위와 같은 결과가 결코 학교 리더십의 악의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총장을 비롯한 보직 교수들 모두 밤잠을 줄여가며 학교 일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학교와 달리 사익이 학교 행정과 결부할 일이 없다는 것도. 학생들에게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고자, 모든 짐을 리더십이 짊어지려 하는 것도. 충분한 의견수렴과 토의가, 재빠른 일 처리를 방해하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의견수렴과 논의, 대화 등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기 전에, 학교 리더십의 선출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동의 리더십은 단 한 번도 학내 구성원들의 손에 의해 뽑히지 않았다. 법인 및 이사회에서 비롯되는 법적 정당성은 지닐 수 있었지만, 학내 구성원에게 비롯되는 민주적 정당성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일부로라도 몸을 낮춰 구성원들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부디, 앞에서 조급하게 끌어가려 하지 말고, 같이 대화하며 걸어가자. 더 이상의 절망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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