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영상 매체들은 우리 눈이 보는 것만큼 ‘사실적인’ 화면들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습니다. 영화 <아바타>를 기점으로 이미 3D 영화 산업의 문은 활짝 열렸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SF, 판타지 영화들이 터져나와 우리 시선을 매료하고 있죠. 이렇게 카메라와 그래픽 기술이 발달하면서 실제를 더 실제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제와 허구의 경계에 있습니다. ‘시뮬라크르’의 시대, 우리는 실제보다도 더 실제같은 허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 <매트릭스>에서 이 딜레마에 대해 수려한 질문을 던지고 있죠. “진짜 현실 같은 꿈을 꿔 본적 있나?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다큐멘터리에서 실제, 즉 ‘현실’ 이란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극영화와 비교해 보자면, 아무리 현실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도 관객은 약간의 각색을 허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요. 쉽게 말해, <변호인>에서 임시완이 연기한 국밥집 아들이 알고보니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큐멘터리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감독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역사 세계에서 벌어진 사실입니다. 즉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의 일이어야 하고, 관객은 그것이 현실의 일임을 믿는 것으로 감독의 이야기에 반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감독은 어째서 ‘현실의 이야기’를 표현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일까요? 현실의 이야기를 특정한 관점에서 담아내는 행위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역사 세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관점을 사회 구성원인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그에 상응하는 울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다큐멘터리는 ‘주장’으로 대변되지요. 즉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한 시각, 곧 이데올로기를 제시함으로써 사회 현상 가운데 존재하는 수 많은 생각들의 ‘경쟁의 장’ 가운데 하나의 목소리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주장을 지지할 것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죠. 우리에게 선택지는 시시각각 주어집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매트릭스>에서 사이퍼라는 인물이 이렇게 말한 바 있죠. “진실 따윈 상관 없어. 난 그냥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선택은 여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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