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이론일 뿐, 쓰이는 영향력 간과할 수 없어”vs“이론부터 확실히 적립해야”

▲ 한 학생이 MBTI 검사를 하고 있다.

“일 년 전에 검사해봤을 때는 ENFP였어요. 근데 다시 해보니까 INTP가 나오더라고요. 이거 진짜 맞는 건가요?”

학생 A는 과거 고등학교 때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센터를 찾아가 상담과 MBTI 검사를 받았다. A는 MBTI를 통해 자신이 누군지 정답을 얻었다고 느꼈고, 그 결과를 대학 진학 때 참고했다. 하지만 일 년 뒤 학교에서 검사를 다시 받았을 때 다른 결과를 받았다. A는 지금까지 자신의 성격을 정확히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MBTI 결과에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오고, 자신에게 맞는 결정을 위한 고민에 이끌려 심리검사를 받아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사가 MBTI다. MBTI는 마이어스(Myers)-브릭스(Briggs) 모녀가 융의 심리유형론을 토대로 만든 자기보고식 성격유형검사로 4가지 분류 기준에 따른 결과를 통해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성격을 분리한다.
하지만 미국의 몇몇 심리학자들은 MBTI 검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글을 포브스와 허핑턴포스트 등에 게재 한 바 있다. 정말 MBTI는 무의미한 것일까? 이에 대해 MBTI 연구소와 심리학자 김태형(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50) 씨의 의견을 들어봤다.

MBTI 자체의 효용성이 중요

MBTI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MBTI가 ▲비과학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융의 이론에 기초했다 ▲일관성 없는 결과에 대한 *신뢰도와 타당도에 관한 의문 ▲사람의 유형을 16가지로 나눈 것에 대한 부적절성 등을 꼽는다.
이에 대해 MBTI 연구소 측의 입장은 어떨까? “MBTI가 비과학적이지 않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연구소는 “비과학적이라는 잣대로는 다른 이론들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며 “그러한 잣대는 과학적 검증방법이 무조건 맞다라는 식으로 미화시키고, 그 이론에 대한 의문을 갖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MBTI의 근간이 되는 *융의 심리유형론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떨까?연구소 측은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융의 이론도 MBTI를 비판하는 이들이 과학적 검증을 거쳐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심리학이론도 모두 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론이다”라며 “MBTI는 검사에 대한 430페이지 이상의 매뉴얼을 제공하는 등 MBTI 자체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상담학회 및 한국상담심리학회 윤리강령에서 심리 검사를 사용함에 신뢰도와 타당도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신뢰도와 타당도에 있어 MBTI 연구소 측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연구소 측에서 제공한 <MBTI® Form M 매뉴얼>에 따르면 MBTI는 여러 방법으로 신뢰도가 측정되었고 높은 신뢰도 값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연구소 측은 타당도에 관해 선호지표의 구조에 대한 적절성이 검토됐다고 밝혔다. 타당도에 대한 연구결과가 다양하게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결과들이 MBTI의 타당도를 증명해 주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연 16가지 유형으로 인간을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융 심리학 입문>에 따르면, 융의 심리유형론은 인간을 고정된 틀로 나누기 위함이 아니다. <융 심리학 입문>에는 융의 심리유형론에 대해 ‘유형론은 모든 사람을 여덟 가지 고정된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하게 하기 위한 체계가 아니며 개인차를 서술하기 위한 체계’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연구소 측도 “MBTI는 두 대극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항으로 분류에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MBTI 점수는 외향 또는 내향의 선호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빈도)를 나타낸다. MBTI가 사람을 무조건 나누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MBTI 연구소 측은 본지와의 서면인터뷰 끝에 “도구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본 검사도구의 영향력이 어떤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국의 유수의 기업들과 많은 나라에서 MBTI를 활용하는 것은 사용자로부터 그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는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검사도구를 누가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에서 상담자의 윤리규범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MBTI는 미완성이다”
확실한 이론적 토대 필요


“건물의 뼈대가 없으면 무너지기 쉽듯이 MBTI도 기본적으로 이론적 기초가 부실해요. 융의 심리적 유형이론에 근거하고 있지만, 융의 이론 자체가 미완성이에요.”
국내 심리학자로는 드물게 공개적으로 MBTI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김태형 씨는 MBTI에 관해 “검사를 만들 때에는 이론이 있어야 그것을 측정하기 위한 검사를 만듭니다. MBTI 경우엔 이론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경험만 가지고 검사를 만들어 신뢰도와 타당도가 없죠. 심리검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Q 신뢰도와 타당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MBTI® Form M 매뉴얼>에 따르면 신뢰도와 타당도 모두 높게 나와 있습니다. 신뢰도와 타당도가 없다면 MBTI가 반세기 동안 공감을 받으면서 쓰일 이유가 있을까요?

MBTI는 예전부터 신뢰도-타당도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었는데 어떻게 신뢰도-타당도 검사를 했는지,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이론 자체가 정립되어 있지 않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타당도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N이라는 유형을 판별하려면 N에 대한 이론부터 정립되어 있어야 하는데 MBTI는 그렇지 않죠. 따라서 타당도를 측정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MBTI가 쓰이는 이유요? 간단합니다. 할 게 없어서죠. 심리학계에서도 성격이론 자체가 정립이 잘 안돼있어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만족할 만한 성격검사가 없습니다 즉, 정신병을 측정하는 임상검사는 많지만 성격검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MBTI가 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이는 것이죠.

Q 융의 이론에서는 인간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분이 적절한 것인지요?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예를 들어 성향이 외향과 내향으로 나뉜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되어있죠.하지만 MBTI에서 제시하는 다른 부분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융의 심리적 유형론은 미완성입니다. 약간 유형론을 언급만 했다고나 할까요? 그 후 MBTI를 만든 마이어스-브릭스 모녀는 경험적으로 인간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을 이론적으로 설명을 못 했습니다. 미완성인 융의 이론을 고쳐서 하면 이해가 될 텐데 그런 점이 부족해서 논란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완성인 융의 이론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나서 검사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지금과 같은 문제점들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본인의 저서 <베토벤 심리상담 보고서>에서 “MBTI 이론가들이 ‘선호’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는 융의 이론에 대한 무지이거나 왜곡”이라고 밝힌 바 있으십니다. 이 점이 왜 문제가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우선 융은 심리적 유형을 구분하게 해주는 중요한 심리적 특성들을 선천적이라고 봅니다. 반면에 선호는 ‘좋아하는 것’을 뜻하죠. MBTI에서는 선천인지 선호인지 명확히 밝히지를 않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성을 통해 선호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럼, 만약 심리적 유형이 선호의 문제라면 선호를 바꾸면 제 특성도 바뀌겠네요?(웃음). 선호로 유형이 바뀐다면 마음대로 유형이 바꿀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선호면 취향인데. 이 문제도 MBTI 측에서 분명히 입장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호가 무엇이고, 왜 선호가 나타나는지. 그런데 이론 정립이 안됐으니 설명이 불가능하죠.

Q 결국 미완성인 이론을 토대로 MBTI가 만들어져 일어난 일인 것 같네요. 그럼 MBTI는 무의미한 검사인가요?

원칙적으로는 이론적 토대가 없어서 일어난 일이죠. 이론이 없는 상태에서 검사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느껴집니다. 심리학 이론에 근거해서 검사문항을 만들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표본을 가지고 실험을 해야 심리검사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굳이 MBTI를 쓰자면 적성을 아는 데에는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죠. 결과가 맞게만 나오면 진로와 취향을 파악하는 데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MBTI 검사의 결과 자체가 자주 틀리게 나오니까 문제지만요. 아무튼 성격검사만으로는 자기를 깊이 이해하거나 미래의 인생계획을 세우기 힘듭니다.

Q 그럼 대학생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단계에서 심리검사나 성격검사를 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성격을 알고 싶다면 MBTI 검사보다는 성격 이론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춰 스스로를 파악하는 게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과 가치관입니다. 성격은 그 다음입니다. 어떤 심리적 유형이든 정신건강이 안 좋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끝으로 김태형 씨는 “MBTI 이론가들도 심리적 유형에 대한 이론적 해명에 초점을 맞춰 그 점을 해명해야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겁니다. 심리적 유형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었으면 하고, 나아가 언젠가는 MBTI를 대신할 수 있는 정확한 검사 도구도 개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신뢰도(reliability): 검사측정치가 얼마나 일관적인지를 나타냄. 검사신뢰도란 같은 검사 또는 그 검사와 동등한 검사 형을 가지고 재검사할 때 똑같은 사람들한테서 관찰된 점수들의 일관성을 말한다.
*타당도(validity): 검사가 측정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측정하는가를 보여준다.
*융의 심리유형론: 카를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의 초기 학설로 의식의 구조와 각 기능의 유형과 무의식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심리 유형을 설명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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