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에티오피아 사진전 <꽃피는 걸음>을 관람하다

에티오피아의 생명력, 그 숨결을 따라
박노해 에티오피아 사진전 <꽃피는 걸음>을 관람하다

‘나의 시는 작고 힘없는 사람들, 그 말씀의 받아쓰기이고 나의 사진은 강인한 삶의 기도 그 영혼을 그려낸 것이다.’ 이 시를 노래한 사람의 이름은 박노해, 본래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해외 분쟁지역에 가서 평화운동을 하면서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강인한 삶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2012년 파키스탄 사진전 <구름이 머무는 마을>부터, 박노해 시인은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에 그 사진들을 꾸준히 전시해왔다. 파키스탄, 버마, 티베트, 안데스, 아프리카, 중동에 이어 7번째로 열리는 이번 에티오피아 사진전은 <꽃피는 걸음>이다.

‘희망은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만큼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한 옥타브 위의 사고를 하는 것이니.’ 사진전은 박노해 시인의 시로 시작한다. 시에서 말하는 ‘희망’을 가슴에 담고, 흑백의 사진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농부의 힘찬 쟁기질
보통 사람들은 에티오피아라고 하면 ‘가난한 나라’의 이미지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20세기 초까지 ‘아프리카의 자부심’으로 불리던 나라였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거의 받지 않았고, 이탈리아 침략군을 당당히 물리쳐 주변국의 독립에까지 영향을 미친 역사도 존재한다. 영광의 과거를 가진 이 나라가 현재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가 된 것은 자연파괴와 기후변화, 거기다 주변국의 끊임없는 영토 분쟁과 내전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뿐만 아니라, 1974년 쿠데타로 집권한 *멩기스투 군부세력이 추진한 ‘집단농장화’ 정책은 자연스러운 마을 공동체를 해체하고, 필요한 만큼 자급하던 다양한 농법을 화학 농법과 기계농법으로 획일화시켜 농민들의 의욕을 저하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숨까지 잃게 됐다.

▲ [사진1] 다시 씨앗을 뿌리기 위해 사진제공 나눔문화연구소


비극적인, 너무나 가슴 아픈 작금의 에티오피아, 하지만 박노해 시인의 카메라 렌즈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고픔과 질병에 지친 농부가 처한 ‘배고픔’과 ‘질병’이라는 상황이 아니라 농부의 ‘건강한 노동’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의 사진은 보는 이들이 안타까움, 찝찝함, 가슴 아픔보다는 삶의 의지와 희망을 느끼게 한다. 또한,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주의 의식이 팽배한 사회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잊고 있던 삶의 원형을 되돌아보게 한다.

*멩기스투: 에티오피아의 군인이자 정치가. 멩기스투의 쿠데타로 에티오피아는 기존의 왕정체제가 붕괴하였고, 사회주의 정권이 장악하였다. 멩기스투는 군사정권인 임시군사행정평의회 의장을 거쳐 노동자당 서기장, 대통령 겸 국가평의회 의장 등을 지내다가 쿠데타로 실각하고 망명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나는 향긋한 커피 향기
‘분나 세레모니.’ 에티오피아의 모든 아침은 집집이 커피 의례로 시작된다. 첫 번째 잔은 우애의 잔. 두 번째 잔은 평화의 잔. 세 번째 잔은 축복의 잔. 가족들은 석 잔의 분나를 마시고 포옹을 나누며 해 뜨는 대지의 일터로 떠난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커피는 하나의 문화를 뛰어넘어 이미 삶이다. 에티오피아의 제1 수출 상품이 커피인데, 생산량의 반이 자국 내에서 소비될 정도이다. ‘커피의 나라’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 [사진2] 에티오피아의 아핌을 여는 '분나 세레모니' 사진제공 나눔문화연구소

사진 속 커피를 따르는 어머니의 손길과 표정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김치을 담글 때의 그 무엇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어머니의 정성을 다한 음식에서 느껴지는 가족을 향한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가 보다. 이를 기다리는 5명의 아이들과 5개의 잔. 까까머리를 한 녀석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의젓하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통을 지키고 여유를 느끼는 에티오피아인들. 그들의 커피, 아니 그들의 삶에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향기가 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4세기경 기독교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인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이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이라 믿고 있고, 북쪽에 위치한 도시 ‘악숨’은 모세가 신에게 받은 십계명이 적힌 석판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 [사진3] 에티오피아의 영성 사진제공 나눔문화연구소

여인의 촉촉이 젖은 눈과 하늘을 향해 간절하게 뻗은 그녀의 손은 에티오피아의 영성을 담고 있다. 그녀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녀의 눈은 희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암울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영성은 그들에게 한 줄기 빛이자, 의지할 유일한 손길이다.

사진전은 여느 사진전처럼 거대하며 화려하고, 수많은 작품이 전시된 것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오히려 사진 한 장, 한 장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진전의 끝엔, 자연 그대로의 삶의 방식으로 소중히 자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에티오피아인들과는 달리, 급박하게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꽃이 만연한 5월이다. 에티오피아 사진전 <꽃피는 걸음>을 보고, 아프리카 저 멀리 에티오피아인들의 생명력과 생생한 그 숨결을 느껴봄이 어떨까?


<전시안내>

일시: 3월 7일-7월 23일
장소: 라 카페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44-5)
관람료: 무료
홈페이지: www.racafe.kr
문의: 02)379-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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