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를 향한 반격: 연극 <바후차라 마타>

▲ 사진제공 이희진PD
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성(性)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를 향한 반격: 연극 <바후차라 마타>
 
얼마 전, 페이스북은 성별 표시 범위를 ‘여성’과 ‘남성’에서 ‘무성’, ‘트랜스’, ‘양성’, ‘기타’ 등 50여 가지로 늘렸다. 현재 미국에만 도입된 시스템이지만, 앞으로 각 국가나 문화에 맞게 적용될 예정이다.한편, 호주 대법원은 주민등록상 바뀐 성으로 표기하는 대신 ‘제3의 성’으로 표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성전환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두 사례는 ‘남자, 여자’라는 성에 대한 기존의 이분법적인 인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연극 <바후차라 마타>는 이러한 세상을 대변하는 듯 ‘우리의 성은 남과 여, 단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바후차라 마타. 인도의 히즈라들이 섬기는 신이다.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바후차라 마타는 어느 성에도 속하지 않는다.여기서 히즈라는 남성 생식기를 외과적으로 제거하여 어떤 성도 가지지 않아 그들이 섬기는 신을 보통 사람들보다 가깝게 영접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에게 사랑은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뛰어넘는 것이다. 인도에서 <하륵 이야기>를 공연할 당시, 인도의 한 제작자로부터 협업을 제안받은 연출가 배요섭 씨는 소재를 찾던 중 이러한 히즈라들의 삶에 주목했다. 배요섭 씨는 그들에 대해 연구하며 인도와 한국의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혹은 자신을 ‘여자와 남자’ 단 두 가지로 정의 내리길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연극으로 그려내고자 결심했다.
 
“It’s just me, that’s enough”
 
 “저는 남자입니다” 혹은 “저는 여자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연극을 시작하면서 배우들은 하나같이 “저는 어디 사는 누구. 남자(혹은 여자)입니다”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에 대해 연출가 배요섭 씨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깊이 생각하지 않죠. 그렇지만 자신의 성에 대해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낯설게 느끼거나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지요”라고 말했다. 즉,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이분법적 기준을 당연하다고 여긴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꼬집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고, 연극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바를 자유롭게 나눈 후, 배우들은 한 명씩 그들이 만난 성 소수자들의 삶을 독백과 함께 행위예술로 표현한다. 남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경우, 그 사람을 남자여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그저 ‘동성애자’라는 말로 단정하였으며, 이들은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았음을 토로한다. 호르몬 이상으로 남성의 몸을 갖게 된 여성은 외적으로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남자취급을 받는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남자로 취급받길 원치 않으며 그녀 자체로 인정받길 원한다. 그녀는 남자의 외모를 가졌을 뿐, 내면은 여자인 까닭이다. 사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 자체를 인정해 주지 않고, 관습처럼 굳어져 버린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이다.
 
장면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학계는 어떤 근거로 설명하는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생물학적 관점,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역할, 통계학적 접근 등 분분한 의견들이 오가지만 열띤 논쟁은 결론을 맺지 못하고 끝이 난다. 이후, 연극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성 소수자의 아픔과,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을 표현함으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결국 이 연극이 조망하고자 한 바는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명확한 사회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가 아닌, ‘성 소수자는 더럽다’는 인식과 함께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성 소수자들의 아픔을 담담히 들어보자는 데 있다. 공연을 관람한 이지연(31) 씨는 “심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공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바후차라 마타>의 연출가 배요섭 씨의 이야기
 
Q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강원도화천에서 살고 있습니다. 2001년 뜻있는 동기들과 공연창작집단 ‘뛰다’라는 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고, 배우의 몸의 순수한 움직임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오브제와 인형, 가면 등을 통해 배우의 표현양식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Q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어떤 극단입니까?
처음에는 동인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협동조합의 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고, 함께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단체죠. 화천의 문 닫은 작은 학교를 ‘시골 마을 예술 텃밭’이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어요. 지금은 창작뿐 아니라, 연구와 워크숍, 지역 문화예술 프로그램, 연극교육프로그램 등의 영역까지 넓혀가고 있습니다.
 
Q 4명의 인도 배우들과 음악가들이 이 공연에 참여하였고, 또한 인도에서 준비작업이 이뤄졌다고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일화나 추억이 있으셨나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작업하던 친구들이 한데 모여 ‘뛰다’의 방식으로 작업하기 위해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땀을 흘렸던 시간이 기억에 남네요. 더운 인도 날씨 아침부터 강도 높은 신체훈련과 즉흥훈련을 함께해야 했는데, 처음엔 힘들어서 꾀도 부리고, 부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한 식구 같은 느낌이 들었죠.
 
Q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극의 흐름(연출가가 관객들과 대화하듯이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 관객들이 무대 위에 앉아 관람하는 시간,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어가는 것 등)이 굉장히 참신했는데요. 틀을 깬 구성을 취하신 의도가 있으신가요?
이 작품은 완성된 무엇으로 포장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이 작품은 예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만난 사람들의 삶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었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관객들과 만나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지금 배우들의 상황을 그대로 무대에 드러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래서 연출인 제가 무대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이 작품은 예술과 삶 사이를 연결하는 어떤 다리 같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어떻게 그 경계 위에서 잘 균형을 잡고 서 있는가 하는 것이죠.
 
Q한국과 인도의 많은 성 소수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배우들께서 예술로 풀어내셨습니다. 관객들은 100여 분의 시간 동안 가슴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출가님께서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말을 직접 해주신다면요?
우리와 함께한 예술가들이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으면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생각, 느낌, 감정들을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질문처럼 관객들도 각자의 질문을 가지고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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