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횟수로 3년째다. 장학금을 준다는, 선배 기자의 미끼에 낚여 신문사에 들어온 지 말이다. 신문사 오피스에 있는 시간이 가시방석 같았던 수습기자부터 오피스에 전공 책과 노트북을 갖다 놓고 거주하는, 생활관을 여관으로만 쓰고 있는 편집국장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신문사 일을 하며 가끔 상상해보곤 한다. 신문사를 안 하는 난 뭘 하고 있을까. 신문사를 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써내는 기사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까.
신문사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난, 지난 198호에 실린 ‘한동 한동 닦았지만 재계약만 19번’이 실린 4면을 펴자마자 반가워하면서 한동신문을 기특해했으리라. 복학 전 알바할 때 점장한테 임금을 뜯길 뻔한 경험이 있어 노동 문제에는 감정이입이 제대로 된다. 기사를 읽어나갈 땐 성격  상 육두문자를 마구 내뱉었을 확률이 높다. 애써 화를 삭이면서 기사를 정독한 후, 고개를 주억댔을 것이다. 흠, 이번 기사 괜찮네. 그러고서는? 신문 덮고 내 갈 길을 갔으리라. 과제도 많고 시험도 코 앞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기사를 읽자마자 책상을 치며 분개한 얼굴로 ‘청소 근로자들을 위해 내 한 몸 바치리라!’고 울부짖는 게 흔치 않은 반응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 당장 나한테 피해 가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아까운 시간을 쓰나. 나같이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청소 근로자의 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일어서야 하는 게 맞고 그전까지는 그냥 지켜보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 다시 편집국장으로 돌아와 본다. 이런 독자들 앞에서 신문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뭘 어떻게 하나. 별수 없다. 기자들이 피켓 들고 깃발 휘날리며 현동홀 앞에서 시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언론인에게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펜을 내던지며 들고 일어서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펜을 잡고 기사를 계속 써나갈 뿐이다. 그 이상은 안 된다.
인터넷에서 평행우주라는 걸 봤다. 잘은 모르겠는데 나 같은 사람이 다른 우주에 몇 명 더 있다는 소리 같더라. 그렇다면 평행우주에 있을, 신문사를 하지 않을 나에게 부탁 하나만 하고 싶다. ‘거리의 성자’ 피에르 신부는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라 말했지만, 이처럼 숭고한 정신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단지, 혹시라도 청소 근로자들 스스로 그들의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모여 일어난다면 이를 외면하지는 말아 달라고. 없는 사람 취급은 하지 말아 달라고. 손을 꼭 잡지는 못할망정 뿌리치지는 말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고 싶다. 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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