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무더운 8월, 경남 합천에서 매년 원폭피해자를 위한 위령제가 열린다. 강제노역으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원폭으로 사망한 원혼과 귀국한 후 피폭에 의한 후유증으로 고통 속에서 살다 숨진 원폭피해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이다. 여기에는 원폭피해자와 합천 군수, 합천군의회 의장과 250여 명의 유족이 참여한다.
같은 달,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는 평화의 종이 울리면서 추모행사가 시작된다. 일본 총리가 참석하고, 각국 대사와 대표단, 5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다. 총리는 일본이 유일한 전쟁 피폭 국가임을 강조하고 평화를 기원한다.
같은 원폭피해자이지만, *히바쿠샤와 원폭피해자의 골은 이처럼 깊다. 히바쿠샤들은 의료적, 법적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원폭피해자들은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자녀가 결혼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감추기에 급급하다.
원폭피해자들은 원폭을 투하한 미국, 침략전쟁과 강제노역을 한 일본, 한일청구권협정을 어설프게 체결한 한국에 의해 아픔을 겪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원폭피해자들은 일본에서 주는 보상이라도 받기 위해 홀로 투쟁을 계속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지원하는 생활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조국인 한국으로부터는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 속에 특별법은 상정조차 되지 않기 일쑤였고, 의료비 상한제에 묶여 제대로 된 의료지원도 받지 못했다. 아픔은 2세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합병증과 구별이 힘들다, 원폭피해2세와 1세간 유전적 연관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을 들어 외면했다.
기사를 쓰면서 인터뷰한 원폭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자신들도 위안부와 같은 전쟁의 피해자인데, 한국 국적인 것이 한탄스럽다고 했다. 지난 세월 동안 받은 수모와 고통이 담긴 목소리는 기자의 마음 한구석을 유리로 찌르듯 아프게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분들의 아픔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몇 번이나 글씨를 지웠다가 썼다를 반복했다. 결국, 해가 지고 나서야 기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사를 쓰면서 참고한 논문에서 저자가 원폭피해자들의 혼이 자신을 휘감은 것 같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 쓴 글을 보고 나니 한참 부족했다. 그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나의 기사로 인해 고통받는 원폭피해자들의 실상이 알려지고, 숨은 피해자들을 찾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히바쿠샤: 일본의 원폭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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