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선 소방공무원

▲ 일러스트 채윤희
▲ 사진 출처 경기도청 소방재난본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감사합니다.저희 부모님께 하나뿐인 아들이자… 저에게는 세상 유일한 오빠였던…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고 서명갑 소방장을 함께 추모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단법인 순직 소방공무원 추모기념회 사이트에 여동생이 남긴 글이다. 한 가족의 가장이자 아들, 오빠였던 고 서명갑 소방장은 폭우로 고립된 야영객을 구조하다 급류에 휩쓸러 순직하였다.
 
한 해 평균 7명 순직해
 
지난 2012년까지 5년간, 한해 평균 7명의 소방관이 소방활동 중에 순직했다.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소방관 순직률은 1만 명당 1.85명이다. 미국의 1.01명과 일본의 0.7명, 그리고 통계가 집계된 2011년에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일본 소방관이 순직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이 수치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높은 순직률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노후화된 장비에 기인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방방재청은 지난 2008년 소방관의 근무 시간 단축과 업무 강도 완화를 위하여 기존 2교대였던 근무 제도를 3교대로 바꾸었다. 하지만 전국 시도 소방관 현원이 37,022명으로 정원 38,134명에 비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고, 그 결과 인력이 부족한 지역은 기존 2교대 인력이 대체하여 오히려 근무시간과 업무 강도가 늘어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소방 장비 노후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재오 국회의원 국정 감사 자료를 보면, 전국 소방차 7,554대 중 사용 가능 햇수 경과차량이 1,314대로 노후율이 17%에 육박하고 전북 지역의 경우에는 31%가 노후화되었다. 소방관 개인안전 장구 보급률도 낮아 보유율이 79%밖에 되지 않고 노후율도 20%에 달하는 실정이다.
지난 2013년 소방방재청 국정감사에서는 2009년 인천 대우일렉트로닉스 화재 현장에서 특수방화복이 지급되지 않아 투입된 소방관들이 낮은 온도에서만 착용하는 일반방화복을 입고 진압에 나서 2~3도의 화상을 입은 사건이 거론되었다. 조사에 의하면 52%가 일반방화복이고 이마저도 내구연한이 지나, 소방방재청의 인명에 대한 안일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만 소방장비 개선이 가능하여 국비 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에 있다. 이에 따라 시도별 개선 편차도 심각한 상황이다.
소방관이 지방 자치 단체에 속한 지방직 공무원이라는 점 역시 많은 문제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직업 특성상 비상 상황에 대비한 비번과 밤샘 근무가 많지만,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초과 근무 수당은 지방 자치 단체의 행사와 선심성 예산에 밀려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임금을 체납해놓고도 소송 여부에 따라 차별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0년 인천시의 경우, 소방관 2,300명이 받지 못한 초과근무수당이 460억 원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지방 자치 단체는 고의로 이에 대해 집단 소송을 제기한 소방관에게는 밀린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소방관에 대해 70억 원만 지급하였다.
한편, 전현직 소방관 사이트 소방의 소리 박명식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소방업무가 국가 소방청 확대에 이어 소방인력 보강과 장비보강, 적정한 국가 예산 투입으로 이어지면 인력부족과 열악한 근무여건에 따른 안타까운 희생도 막을 수 있고 국민의 충실한 봉사자로서 소방관들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벼랑 끝에선 소방공무원
재정, 심리적 지원 필요해
 
소방공무원들은 목숨을 걸고 화재진압을 위해 사건 현장에 뛰어든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장에서도 몸을 바쳐 시민을 돕는다. 하지만 2013년 소방방재청 국정감사에서 5년간 소방공무원의 자살자 수가 같은 기간의 순직자 수에 육박하는 등 그들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방공무원,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
 
재정적, 심리적 지원 적어
“소방공무원의 목숨은 시민의 스페어 목숨이 아닙니다. 소방공무원도 불에 닿으면 뜨겁고, 연기를 많이 마시면 죽습니다…” 경북 포항 북부 소방서 인터뷰 중에 나온 말이다. 화재 현장과 같은 벼랑 끝에서 생명을 담보로 사투를 벌이는 소방공무원이지만 그 대우는 부족한 점이 많다. 2012년 기준 소방공무원 순직자는 7명, *공상자(公傷者)는 286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은 빈약하다. 화재 진압의 경우 지급되는 위험수당은 5만 원이 전부이며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상황에 따라 변동이 심하다.
한편, 재정적인 보상 외에도 소방공무원에 대한 심리적 지원 역시 부족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할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많은 소방관이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소방학교에 따르면 현장에서 근무하는 소방공무원 중 13.3%가 ‘정신질환 수준의 우울증 증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27%가 처참한 시신을 목격한 일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답하였다.
이 숫자의 의미를 보여주듯, 2011년에는 한 달 동안 소방공무원 3명이 잇따라 자살하였고, 경찰조사 결과 이들 모두 우울증을 앓고 있음이 밝혀졌다. 한편,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기적인 힐링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지만, 규모나 구성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사회인식 달라져야
시민의식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북부 소방서 신영정 홍보팀장은 인터뷰에서 *주취자 신고를 대표적으로 들었다. “주취자의 경우에는 생명이 위급하거나 응급조치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부르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 정말 응급조치가 필요한 환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고, 또 많이 취하신 경우엔 폭력적이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주취자 출동이 걸리면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소방공무원 업무의 기준이 되는 ‘표준작전절차(이하 SOP)’에서는 주취자와 관련해 “주취자가 폭언과 폭행을 할 경우 이송거절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응급상태가 아닌 단순 주취자가 119를 호출했을 때 폭언과 폭행에 대응하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SOP가 좀 더 넓은 범위로 확대돼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순직소방관추모회 김종태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소방에 계시던 분들이 학력이 높았던 분들이 아니라 공무원 중에서도 최하층에 속하셨으니까 그분들이 순직해도 국가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하며 소방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상승을 강조했다. 지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준비에 소방공무원 100여 명을 투입하여 눈을 치우고, 의자를 닦게 한 일과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소방공무원을 14등급으로 분류하는 일 등은 소방공무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로 보여준다.
*공상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등 공익을 위해 헌신하다가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
*주취자- 술에 취한 사람
 
순직소방관, 그들을 위한 추모회
‘무엇보다도 가정을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소방관 스모키 린(Smokey Linn)의 소방관의 기도>에 나오는 말이다. 국민을 위한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소방관이 순직한다면 이들은 어떤 대우를 받을까? 순직소방관추모회의 사무총장 김종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순직소방관 추모회를 소개하자면?
순직 소방관 추모회는 유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추모회 행사는 매년 4월에 현충원에서 진행하며 지역별로 유가족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다른 직업의 순직자를 위한 행사보다는 참여가 많은 편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참여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70~80년대는 가장과 사별한 후에도 아이들을 키우고 시부모님들과 잘 살았던 가정이 많았지만, 최근 순직자들의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행사참여가 저조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Q 추모회 예산은 모금으로 충당하고 계신가요?
예산의 80%는 추모회의 몇몇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몇몇 분들이 한 달에 만 원씩 후원하기도 하고요. 나라의 지원을 바라기보다는 동료를 잃은 소방관들께서 참여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바람일 뿐이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되지 않아요.
Q 단체를 운영하는데 힘든 점은 없는지?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해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우리 단체뿐만 아니라 추모단체는 잘 운영이 안되더라고요. 특히, 공무원 중에 최하층에 있는 소방공무원의 순직에 국가에서 그다지 의미를 두는 것 같지도 않아요. 추모회를 정부에 대항하는 단체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요. 또, 최근의 세태를 보면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죽으면 잘 그 슬픔을 잊고 사는 것이 지인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행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잖아요. 추모 사업한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가정이 안정돼야 하는데 경제적인 안정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사회의 인식은 아직 바뀌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Q 소방방재청에 지원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었는지?
작년에 저희가 10회 행사를 하고 해산을 하려고 했었어요. 더 이상의 행사는 의미가 없다고 여겨진 거죠. 그런데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법인이 됐고, 많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여러 단체에서 같이 활동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법인이 되든 안 되는 추모의 본질은 변질되지 않는 것이거든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화재진압을 하시다가 순직하신 분들을 기리고 그분들이 아름다운 등불로 남기 원하는데 법인이 돼서 본질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이라고 하는 것은 없고, 원래부터 소방방재청에서 행사를 같이하자고 했지만, 아직 그런 적은 없어요. 정상적이라면 올해 4월 20일에 행사가 열려야 하지만, 아직까지 불확실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Q 국립현충원의 묘역이 너무 작다고 들었다. 이 문제는 해결이 된 것인지?
지금 소방관이 안장돼있는 곳은 대천현충원에 있는 소방공동묘역인데요. 94년도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공무원 등 다른 곳에 안장되기 힘든 분들도 함께 안장됐죠. 그러다가 2012년에 이름이 소방공무원묘역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분들과 함께 안장되고 면적은 전체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재는 84분의 소방관님이 안장돼 있는데, 원체 자리가 작고, 조건이 까다로워 안장이 잘 안 되는 편입니다. 
Q 현재 소방활동 중인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생각을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소방관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선발과정이 개혁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시스템 중 선발과정에 불만이 많습니다. 소방관이 되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과 소방관이라는 특수성의 이해가 필요하지만, 요새는 다른 공무원 시험을 떨어져서 오는 경우가 많아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있고, 후에 이직할 확률이 높아요. 직업선택의 자유 때문에 사람들을 제한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했죠. 그분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소방관은 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성적 순으로 뽑다 보니 공동체 의식이 많이 약해지는 것 같아 운영이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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