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고민하는 재봉틀 피카소, 아티스트 정민기

▲ 사진작가 정희기
봄비가 세상을 촉촉이 적시던 지난 3월 12일,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이후 갤러리’에서 ‘재봉틀 피카소’라 불리는 정민기 작가를 만나보았다. 작업실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갤러리 곳곳에는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크고 작은 재봉틀들이 놓여 있었다. 남자는 재봉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버린 그에게서 ‘재봉틀 드로잉’과 삶의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아티스트 정민기입니다. 재봉틀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작가입니다. 요즘은 특히 섬유를 다루는 것이 재미있어서, 섬유를 소재로 한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Q 재봉틀을 작품의 소재로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미디어 전반을 다루는 것을 좋아해요. 대학에서도 ‘멀티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멀티미디어라고 하면 보통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잖아요. 미디어에서는 다룰 수 있는 모든 소재가 다 도구가 될 수 있기에, 그때부터 여러 가지 도구를 작업하는 데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졸업할 때쯤 접하게 된 것이 재봉틀이에요.
 
Q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일단 환경을 많이 생각해요. 소비를 줄일 수 없다면 잘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인데, 이런 생각이 제가 작업하는 방식에 굉장히 많이 적용돼요. 그래서 재봉틀로 뚫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소재로 쓰고 있고, 실제로 폐기물들을 주워다가 작업을 많이 해요. 이러한 재료들을 이어서 재봉틀로 그리기도 하고, 바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어요. 평면 작업뿐만 아니라 입체적으로 만들기도 하고요.
 
Q ‘재봉틀 드로잉’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아무래도 재봉틀로 다루는 것이 주로 섬유다 보니, 섬유가 만들어낸 역사라든지, 사용방식 등이 아이디어로 떠오를 때가 있어요. 가장 간단하게는 제가 입던 옷도 캔버스가 될 수 있고요. 제가 그리는 그림들이 단순히 벽에만 걸리는 게 아니라 생활 속으로도 깊이 들어갈 수도 있어요. 또한, 재봉틀을 쓰게 된 다음부터는 어렵게 느껴지기보다는 쉽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예술이 꼭 권위주의적이어야 하는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재봉틀 드로잉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셨어요. 어떤 작업인가요?
재봉틀 드로잉 퍼포먼스는 2011년도에 영화배우 김재화 씨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것으로 시작됐어요. 배우는 제가 만든 가면들을 쓰고 그 가면을 표현한 의도에 맞게 연기를 하고, 저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장면을 재봉틀로 그렸어요. 제가 재봉틀을 쓸 때 보통 페달을 밟아요. 페달은 재봉틀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배우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주고받는 메시지를 재봉틀이라는 소재를 가운데에 두고 퍼포먼스로 푼 것이에요. 저는 제가 하는 작업들 자체가 완성돼서 벽에 걸려 있을 때보다도, 이렇게 과정 자체를 공유하는 것이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했던 맨 처음에 한 퍼포먼스와 작년 서울 시민청에서 한 퍼포먼스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서울 시민청에서 한 퍼포먼스의 경우엔, 많은 예술가가 저를 위해 재능 기부 형태로 도움을 줬어요. 그런데 저보다도 오히려 그분들이 더 신 나 하셨던 것 같아요. 일에 지친 아티스트들에게서 ‘일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예술 하고 싶다’는 의지가 보였거든요.
또한, 일본에서 한 번, 작년엔 프랑스 파리에서, 며칠 전엔 중국에서 퍼포먼스를 했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재봉틀을 갖고 거리나 무대로 나가니까 하나의 예술 장르를 통해 일정 부분 소통할 수 있어 굉장히 생경하고 재미있었어요.
 
Q 작가님의 새롭고, 실험적이며 자유로운 작업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이런 일들이, 저로서는 새롭거나 신선하거나 처음 겪는 일 같다는 느낌은 없어요. 다만 무척 재미있다는 건 확실하더라고요.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저도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 생각하기에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꾸준히 해요. 친구들과 만나더라도 ‘오늘 하루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까?’ 항상 고민하고요. 근데 이런 재미있는 일들을 멀리서 찾으려고 하면, 재미있는 일도 재미없게 되거나, 재미있는 일이 어느 순간 힘들어지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어떤 사건이라고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바꿔 볼까?’ 하는 일종의 ‘다른 각도로 관찰하기’ 같은 발상을 해요. 그것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어릴 적부터 꿈이 없었어요. 어떤 직업이라고 하면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틀이 있잖아요. 어떤 꿈을 정해 놓으면 꼭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싫었어요. 어떤 단어로 딱 규정지어 버리는 순간. 내 꿈이라는 것 자체가 재단 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버리는 게 꿈이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내면의 자유로움 같아요.
굳이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대답을 하자면,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게 꿈이에요. 어떤 상황이 되던지 재미있게 사는 게 꿈이고, 무척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스스로도 저 자신을 구속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Q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학생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 서 있지 못한다고 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물론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일정한 틀을 정해 놓고 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성적도 잘 나와야 하고, 같은 전공의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야 하고요. 그래도 눈치껏 행동하면서, 그런 틀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겁먹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신만의 길을 가세요. 혼자면 힘들겠지만, 그런 뚝심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러 친구를 만나면 생기게 돼요. 물론 충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잘 대처를 하면서, 내면이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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