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앱등이’다. 아이폰을 둘러싼 스테인리스 테두리를 쓰다듬으면 ‘하악 하악’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진성 앱등이다. 당연히 아이패드도 갖고 있다. 평소에는 다치지 않을까 두려워 케이스를 씌우고 다니지만 가끔 맨살을 보고 싶으면 벗겨서 쓰다듬곤 한다. 그 때마다 나긋나긋한 금속 뒷면이 내 마음을 간드러지게 만든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이 녀석들은 험난한 세상에 던져진 날 위로해주는 차가운 곰인형이다.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이 녀석들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즐거움을 느꼈을 일도 없었을 테고. 그를 다룬 책도 영화도 보지 않았지만 그가 죽었을 때 깊은 애도를 표했다. 더불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니 잡스에게 고마워할 사람은 나 말고도 많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싸이를 창조경제의 예로 들 듯, 사람들은 온갖 좋은 가치에 잡스를 끌어다 붙인다. 혁신은 물론이고 창조, 효율, 리더십, 철학, 경영, 도전 등등등. 껄끄러운 대상들을 다루기 위해 현 정부가 ‘종북’이란 무차별적인 낙인을 찍어내듯이, 잡스는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마다 휘둘러 원하는 가치들을 토해내게 만드는 도깨비 방망이다.
지난 196호에 실린 ‘융합은 대박이다’라는 인터뷰에서 장순흥 총장은 스티브 잡스를 두 번 언급했다. 잡스는 ‘창의력을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주장과 학생들이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부분에 등장했다. 또한 잡스 이야기를 꺼낸 후 바로 뒷문장에서 ‘그러니깐 나는 기존의 것을 배우는 게 중요한데, 너무 그것만 배우면 창의력이 잘 안 자란다는 거죠. 다른 것이랑 섞어야죠’라고도 말했다. 위와 같은 장 총장의 말을 조합해보면, 한동대는 전공 간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교육을 통해 잡스와 같은 창의적인 학생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셈이다. 그를 위해선 장 총장 자신도 잡스와 같이 창의적인 리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장 총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회가 필요로 하게끔 하는 인재를 만들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이를 거칠게 표현한다면, 사회라는 소비자의 필요에 부합하는, 학생이란 상품을, 대학이란 기업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풀어 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사회가 요구하는 학생을 만들어낼수록 대학의 가치는 올라간다. 하지만 잡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신 소비자의 욕구를 창출해내는 상품을 만들었다. “나의 성공비결은 간단하다. 소비자를 자발적으로 몰려들게 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대학이 취업양성소가 된지 오래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사회는 소비자며 학생은 상품이고 대학은 기업이다. 인정한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이 사회가 감당하기엔 이미 사치품이 되어버린 대학의 모습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왕이면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어달라. 난 이미 융합되어버린 상품대신 융합할 수 있는 상품이 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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