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전달을 넘어선 글자의 아름다움, 서예와 캘리그라피

“이 달(세종 25년(음력 1443년) 12월)에 임금께서 몸소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내니……이것을 훈민정음이라 부른다(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是謂訓民正音).”

인류의 참된 역사는 언어의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그 아름다움은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점과 선, 그리고 획이 이루는 미묘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서예가 그 대표적인 예다. 각 획마다 우리의 혼과 얼을 담아왔고, 서예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의 얼이 담긴 서예와 현대판 서예라고 불리는 캘리그라피에 대해 살펴보자.

글자로 하는 예술, 서예


서예라는 명칭은 글씨 부문이 예술 분야의 하나로 인정이 되면서 생겨났다. 이전에는 일본과 같이 ‘서도(書道)’라고 했다가 우리의 독자적인 명칭을 붙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는 붓글씨란 마음을 다스리는 일종의 정신적 수양으로써 도(道)에 치중해 서도라고 호칭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붓글씨를 쓰는 행위를 예술이라 간주해 서예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의 서예는 한자로부터 시작됐다. 한글은 15세기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졌으며, 당시에 한글은 심미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자는 상형문자로 글자 대상의 원형을 그대로 지녔기 때문에 일찍이 한자 문화권에서는 한자를 예술적 감상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또한, 한자는 붓, 먹, 종이를 통해 표현된다는 점에서 조형적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서예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광복 이후다. 1945년 9월 손재형이 주도한 조선서화동연회(朝鮮書?同硏會)의 창립과 더불어 시작된 서예 활동은 1949년 11월에 열린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활성화됐다. 초창기에는 개인 활동 중심이던 서예는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적 교류를 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이후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의 격동기를 거쳐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면서 서예인구는 급격히 늘었다. 각종 서예 연구 자료와 재료가 보급됐기 때문이다. 서예는 문자를 이용해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글자 예술이라는 점에서 현재에 이르러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개성 있는 글자체, 캘리그라피(calligraphy)


서예의 새로운 형태인 캘리그라피를 통해 서예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캘리그라피는 로마글자의 서사 예술로써, 우리나라의 서예와 같이 글자를 예술로 삼는다. ‘캘리그라피'라는 문자 본연의 뜻은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로 의미 전달의 수단을 나타내지만, 본연의 뜻을 넘어 순수 조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 등을 기준으로 캘리그라피를 관람할 수 있다. 일관되고 기계적인 디지털 글자체와는 달리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이기에 쓰는 사람에 따라, 쓰는 도구에 따라, 쓰이는 바탕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붓을 중심도구로 해 나뭇가지, 풀잎, 갈대 등 다양한 도구들이 사용된다. 두껍거나 가늘거나, 흐르거나 멈추거나 강하거나 부드러운 움직임들이 각각의 매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캘리그라피로 쓰인 로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된다. 캘리그라피는 단순히 글자 자체의 내용전달이 아니라 형상, 이미지, 풍자 등의 창의적인 요소가 가미된 예술분야이기 때문이다. 사극에서만 사용되던 캘리그라피는 최근 들어 영화와 책자, 다른 장르의 드라마와 예능에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종영 드라마인 <최고다 이순신>, <구가의 서> 등도 캘리그라피를 사용해 로고를 만들었다. MBC 미술센터 박명호 그래픽담당 부장은 “캘리그라피가 아날로그적 감성을 갖고 있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모두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서서 글자 모양에 따라 쓰는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예술의 한 분야라는 것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동양에서 들여와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예술로 발전한 서예와, 서양에서 시작돼 글자를 아름답게 나타내는 캘리그라피 모두 우리나라의 글자의 예술성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듯하다. 서예와 캘리그라피 작품들을 감상하며 그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강지영 기자 kangjy@hgupress.com

저작권자 © 한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