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률 교수에게 듣는 현대 한국 문화사역

세상엔 다양한 직업이 있다. 직업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하는 일도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선교에 있어 선교를 할 수 있는 직업, 할 수 없는 직업이 따로 존재할까? 연극 배우 겸 극단 ‘증언’에서 상임연출가로 사역하고 있는 언론정보문화학부 최종률 외래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선교극단 ‘증언’은 어떻게 창단됐나요?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 하루는 무심코 하숙집에서 교회첨탑을 바라보게 됐어요. 황혼녘의 교회첨탑 위 십자가의 실루엣은 제 영혼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아, 교회에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에 이끌려 제가 살 던 주변에 있는 동숭교회로 향했어요. 이후, 신앙이 깊어지면서 연극을 통한 문화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됐습니다. 고등부와 청년부를 중심으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작은 극단을 꾸린 것이죠. 교회 안에서 작품들을 하나, 둘 연출해가는 중에 한 계기로 인해 전문기독교극단의 출범 가능성을 가늠하게 됐답니다. 바로 마을 노인들을 대상으로 만든 전도용 연극 <해 돋는 골목길>입니다. 이 작품을 연출하고 난 후, 기독교극단 창단에 박차를 가했고 마침내 뜻을 함께하는 연극선교자들과 함께 ‘증언’을 설립할 수 있게 됐어요. 창단하자마자 각종 난제들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가득한 출발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답니다.

Q 기독교인이 연극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문화사역의 많은 영역 가운데 가장 친근하고 오래된 장르가 바로 연극입니다. 연극은 언제나 갈등하는 인간을 그리는데, 이를 통해 연극의 본질이 기독교적이라 말할 수 있어요. 타락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유리된 채 갈등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무대 위의 한 인간이 갈등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켜 보게 됩니다. 영적인 성찰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러한 특성을 지닌 연극 안에 복음과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으면, 연극이 영적 성찰을 통해 영적 결단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성령의 도구가 될 수 있답니다. 이처럼 연극 등의 문화는 매우 효과적인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선교 관련 공연을 꾸준히 열고 있는 것입니다.

Q 연극선교의 과제와 전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연극의 수준은 전문극단들과 비교할 때 아직은 여러 면에서 열세인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정체기를 지나 발전기로 접어든 시기인 만큼 매우 희망적이랍니다. 무엇보다도 연극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교회가 예배실을 다목적 공연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자체 소극장을 마련할 뿐 아니라 직접 극단을 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또한, 기독교 전문극단이나 뮤지컬 선교단체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선교관련전문예술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설립되는 등 문화선교의 기반이 다져지고 있답니다. 실력이 검증된 기성 연극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으며, 국내외의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기독청년들도 다수 있어요. 이렇듯 연극선교의 인프라가 잘 구축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와 미래에 이러한 전문 인력들을 어떻게 사역의 현장으로 이끌어낼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어떻게 제작비를 충당해 극을 올릴 것인가에 대한 좋은 방안도 강구해야 합니다.

Q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연극선교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문화적 영향력을 거의 상실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제 우리는 전통과 관습에 안주하기보다는 “땅을 정복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문화명령에 순종해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입니다. 이 가운데, 연극선교는 문화라는 그릇 속에 복음을 담아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문화선교의 전초기지가 돼야 해요. 사명감과 기도로 준비한 한편의 연극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관객을 은혜롭게 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며, 방황하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되도록 말이죠. 이를 위해 기독교 연극인들과 한국교회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문화선교는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것보다는 성도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교회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에요.


박형민 기자 parkhm@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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