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의 사진전시회 싸이트 언씬(Sight unseen)

Bruce Hall

‘왜 우리가 보지 못하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언젠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하기를 당신은 원하는가. 만약 그 대답이 “예스”라면, 우리는 보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고,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속 한 구절이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보지 못할 뿐인, 시각장애인들이 담아낸 사진 전시회, <싸이트 언씬(Sight Unseen)>을 다녀왔다.

Annie Hasse

보이지 않는 만큼, 더욱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


광화문역 8번 출구를 나와 도착한 세종문화회관 전시회장의 앞은 검은 천으로 꾸며져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의 답답함을 상징하는 걸까, 검은 문을 열고 들어선 전시회장의 내부에는 은은한 조명과 역시 어두운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총 12명의 사진을 작가별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었는데, 사진을 잘 알지 못하는 기자도 어떤 작가가 찍은 사진인지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작품의 개성이 저마다 뚜렷했다. 인물, 풍경, 인체, 사물, 심지어 적외선 사진까지 각자 뚜렷한 사진 세계를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검은 방이었으나 작가에 따라 벽과 그 전시장의 분위기가 계속해서 달라진 것도 사진 세계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됐다. 가장 처음 전시돼 있던 작품의 작가는 헤라르도 니헨다(Gerardo Nihenda)였는데, 그는 멕시코 도시와 시골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내었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브루스 홀은 물과 햇빛 등으로 인한 사물의 왜곡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또한 피트 에커트(Pete Eckert)는 적외선의 파장을 담아내는 굉장히 독특한 사진들을 찍었는데, 새롭고 세련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Bruce Hall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보이지 않기에 본다!


시각장애인들의 사진전인 만큼,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점자로 된 설명도 있었고, 안대를 끼고 사진을 느껴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사진을 조각처럼 올록볼록 튀어나오게 만든 것인데 세밀한 선까지 느끼면서 어떤 사진인지 윤곽을 느껴보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시각이 주는 ‘봄’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시각을 잃어버린 기자에게 사진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시력’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시력은 인간을 의존적으로 만들어 우리가 지닌 시각적 한계에 대해서 자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식을 잊게끔 한다. 전시회의 사진작가들 또한 눈이 아예 보이지 않는 맹인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시각 장애인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의 불편한 시력이 시각적 한계에 대해 더욱 자각하게끔 만들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탐구를 가능케 한 것이다.

Kurt Weston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커트 웨스턴이라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사진작가였다. 그는 보이지 않는 자들의 생각과 느낌을 카메라로만 담기 힘들었지만, 평판스캐너를 이용해서 아래와 같은 작품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하나님의 귀여운 장난인가 봅니다. 법적 시각장애인을 예술 분야에서 이렇게 잘되게 하시다니.’ 훌륭한 사진으로 눈이 즐거웠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 안에 갇혀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끔 하는 싸이트 언씬, 우리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과 교감하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


박형민 기자 parkhm@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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