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에 노출된 한국 대중문화를 되돌아보다

작년 한 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필두로 하여 한국의 대중문화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및 각종 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그 나라의 대중문화는 그 나라의 얼굴이요,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한국 대중문화의 실태는 어떠할까?

너무 유명해져서,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알고 있는 싸이에 대해 한번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작년 등장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따라 하기 쉬운 안무와 중독적인 멜로디로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빌보드차트 2위를 차지하는 전례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전 세계인들이 ‘강남스타일’과 한국의 문화에 열광했고, 이제 싸이는, 좋으나 싫으나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한국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강남스타일’이 일으킨 영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이었고, 자연스레 전 세계가 싸이의 차기 신곡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남스타일’ 발표 10개월 만에 새롭게 들고 나온 노래가 ‘젠틀맨’이었다. 젠틀맨 역시도 따라 하기 쉬운 안무와 중독적인 멜로디, 그리고 ‘강남스타일’로 쌓은 싸이의 인지도로 인해, 노래가 공개되자마자 빌보드 상위권을 단숨에 점령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뮤직비디오’가 없었다면 젠틀맨이 이토록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클릭 한번으로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가 가능해진 셈인데,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매우 유쾌하고 또한 성(性)스러웠다. 하이라이트는 가인이 어묵을 먹는 장면이었는데, 은유적인 표현이지만 무척이나 외설적으로 표현하여 누구라도 이 노래의 전체적인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기 어렵지 않았다. 사실, 외국의 빌보드를 장악하는 수많은 노래들이 ‘섹스’에 관해 노래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대중가요, 그중에서도 특히 메이저 음악에서 ‘섹스’에 관해 노래하였다는 것은 한국의 달라진 성 관념을 실감하게끔 한다. 비주류 음악으로 가면 그 예는 더욱 다양해지고,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Dok2의 ‘비밀 2’ (더 짙게 내 몸 빼곤 다 잊을 수 있게 넓은 침대 아니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소파)나 Defconn의 Sex drive (기나긴 기다림에 뒤엉킨 뜨거운 너의 몸의 열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전엔 비주류 음악의 주제였던 ‘섹스’가 메이저 음악의 주제로도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디 음악뿐일까. 코미디에서도 섹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개그 프로그램 중 하나인 ‘SNL’은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섹스다. 등장하는 여자 게스트들은 가장 ‘섹스어필’이 되는 복장을 하고 나오고, 섹스를 연상시키는 행위를 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예전엔 공중파 방송에 등장하는 연예인이(SNL은 공중파가 아니다.) 이런 직설적인 연기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만큼 한국 사회가 예전보다 성에 더 자유로워지고 관대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과 ‘야한 복장’뿐만 아니라 웃고 싶은 ‘개그 프로그램’이나 심지어 귀로 듣는 ‘노래’에서도 항상 유혹에 시달려야만 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한일서 2장 16절).’ 위 말씀처럼 우리는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은 세상이 주는 정욕을 항상 경계해야만 하는데, 세상이 주는 정욕이 너무나 많아서 깨끗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섹스’에 대해서 무작정 정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은 자 돌을 던져라’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여, 마음으로 하는 ‘혼 외 섹스’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나 몰라라 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취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성(性)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동족의 구원에 대한 근심이 끊이지 않았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한국문화가 줄 수 있는 구원의 영향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근심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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