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장애인 JnetTV의 윤석권 국장을 만나다

장애인인터넷방송국(JnetTV)에는 세상을 향해 ‘똥침’을 쏘아대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곳에서 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윤석권(사진) 씨다. 어렸을 때 화상을 입어 생(生) 대부분을 화상장애인으로 살아온 윤 국장을 만나 그의 삶과 생각에 대해 들어봤다.

Q 방송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방송국의 기획제작국장으로서 국장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동시에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장애 관련 시사 프로그램인 <윤석권의 똥침>의 대본을 쓰고, 진행도 겸합니다. 제가 사실 현업으로 방송 일을 했던 사람도 아니고, 방송전문가도 아니에요. 하지만 장애인 단체에서 오래 일해왔고 제가 장애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장애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죠.

Q 화상은 어떻게 입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화상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입었어요. 부모님께서 가내 수공업으로 구두를 만드셨는데, 긴 부츠에 들어가는 털 안감을 방에 죽 펴놓고 본드 같은 인화성 물질로 작업하시다가 방에 화기가 쌓였었나 봐요. 그 시절 겨울은 무척이나 추워 문을 꼭 닫고 일했는데 어머니께서 환기하시려 문을 연 순간, 밖에 있던 불과 만나 ‘펑’하고 폭발했죠. 아마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 이후 기억이 없어요.

Q 화상을 입고 나서 어떠한 아픔이 있었나요?


화상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기억은 4단계로 정리할 수 있어요. 1단계는 사고를 입는 그 순간이에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팠던 것 같아요. 2단계는 병원에서의 화상치료를 받는 과정이에요. 멀쩡했던 피부가 불에 의해 달궈지면서 생살이 다 드러났죠. 생살에 치료를 위해 거즈를 덮어 놓는데, 거즈를 떼는 순간이 가장 아파요. 생지옥이 따로 없죠. 또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제가 아무리 제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해도, 거울을 주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가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식사가 가능해 음식이 왔는데, 스테인리스 그릇에 어렴풋이 비치는 얼굴이 제 얼굴이 아닌 거예요. 이때가 정신적 충격을 동반한 3번째 고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건 특히 얼굴에 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해당돼요. 이후에 일단 치료가 끝났으니까 학교생활도 하고, 길거리를 활보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진짜 많이 쳐다보는 거에요. 흉터가 깊게 남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정말 싫었어요. 게다가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거예요. ‘괴물’이라는 말은 기본이었어요. 이때 받는 아픔이 4번째 고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르는데, 정말 이 슬픔과 아픔은 뭐라 말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이 고통은 지금도 진행 중이에요.

Q 화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보장은 잘 마련돼 있나요?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화상뿐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상처가 많아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꼭꼭 숨어있죠. 그래서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2003년에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사회복지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증인 사람들이 30만 이상이라고 해요.


2003년부터 안면 변형이라는 유형으로 안면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됐어요. 이때 복지부에서 예상했던 등록인원이 20,000명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2,000명 정도만 등록한 거에요. 등록 기준이 너무 까다로웠던 탓이죠. 안면 변형 장애에는 2급부터 4급까지 있는데, 제일 낮은 4급을 받으려면 얼굴과 목을 포함해서 60% 이상 변형이 됐어야 해요. 50%만 변형되면 보장이 안 되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마징가 제트>의 악역인 아수라 백작도 얼굴 반이 여성, 얼굴 반이 남성이라서 60% 이상 변형이 아니므로 혜택을 못 받는다고 했었어요.


이 밖에도 화상과 관련한 지원이 너무 적어, 단계적으로라도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어요. 예를 들어 화상장애인 중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뼈나 근육 등은 계속 자라나는데, 피부가 화상을 입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같이 성장하지 못해 무척이나 땅겨요.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피부이식과 같은 수술이 필요한데, 아이들만이라도 지원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또한, 화상 입은 사람들이 성형하는 게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취급됐었어요. 그런데 이건 예뻐지려는 것과는 다른 것이잖아요. 이와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냈었죠. 그래서 지금은 처음의 1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1회로는 모자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일보 전진했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30년 만의 관철이에요.

화상장애인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단순히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장애인이 아니에요. 물리적 혹은 사회적인 장애물 때문에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엘리베이터가 없을 경우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그 순간 물리적 장애인이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어릴 때부터 통합교육 등을 통해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꾀하고, 법과 제도가 바뀌어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우리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비로소 화상장애인들에게 말할 수 있겠죠. 숨어 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조슬기 기자 chosk@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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