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수준의 욕은 진통제 효과 있어

“조카 크레파스 십팔 색이야(사진)” 등 욕을 유머와 놀이처럼 즐기는 전시인 <상년> 전이 서울 마포구 당인동 ‘그 문화 갤러리’에서 4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렸다. 이 전시는 ‘욕’이라는 금기시되는 것을 공적으로 노출할 때 발생하는 쾌감과 재미를 공유하고자 기획됐다. 또한, 순우리말의 다양한 측면과 어원, 생활사를 함께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주옥같은’ 문화콘텐츠 속의 욕


최근 개봉한 ‘연애의 온도’를 본 몇몇 관객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이 영화 중 격한 감정 대립 속에 두 사람의 살벌한 욕설과 싸우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장면으로 캐릭터의 감정선을 그려낸 것이 거부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이처럼 욕은 대체로 부정적인 언어이다. 특히 악의적인 감정이나 비난하려는 의도로만 사용될 때는 듣는 사람은 치욕적이고 모욕감마저 들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부정적인 요소들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작품에 부담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오히려 욕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배우 장명옥은 케이블방송 tvN ‘SNL 코리아’의 욕쟁이 할머니로 등장해 화제를 끌고 있다. 그녀의 욕이 섞인 시원한 한마디가 사람들의 답답함을 뚫어주고 유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프로그램의 배우 김슬기도 ‘국민 욕동생’이라 불리며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배우 김수미 또한 욕을 잘 구사하는 캐릭터로 유명하다. 그녀의 구수한 욕 한마디는 오히려 정겹게 다가올 뿐 아니라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을 주기도 한다. 욕은 일종의 금기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금기를 깨뜨리는 데서 오는 쾌감과 재미는 대단한 것이다.

욕해도 되나요?


욕도 잘만 쓰면 약이 된다. 때와 장소 내용을 잘 구분하면 카타르시스나 단기적 진통 효과 같은 긍정적인 면을 가진다. 우리가 쓰는 욕은 그 유래에 비해 훨씬 덜한 강도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염병할’이란 단어는 ‘염병(장티푸스)을 앓아서 죽을’이란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욕을 강한 어조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에만 쓰고 있다. 이는 욕설 자체가 일상생활에서 친근하게 사용된 결과이다. 김열규의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에 따르면 욕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일례로 사람들은 욕을 먹으러 욕쟁이 할머니의 음식점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욕을 함으로써 기분이 나아지는 사람도 있다. 욕은 감정의 발산인 동시에 감정의 달램이고 삭임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영국 킬 대학 심리학과 리처드 스티븐스와 클라우디아 움란드 교수팀은 욕이 신체적 고통을 줄이는 진통 효과도 지닌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평소 욕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얼음물에 손을 담근 채 얼마나 버티는지를 측정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일상적인 말을 할 때 평균 70초 정도를 버텼지만 욕을 하면서는 그 두 배에 달하는 140초를 버텼다. 이러한 욕의 진통 효과는 욕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통증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현상인 ‘스트레스 유발 무통’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스 박사는 “절제된 수준의 욕은 효과적이고 손쉽게 쓸 수 있는 단기 진통제”라며 “약품이나 진통제가 없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이런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욕의 긍정적인 효과는 나의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남의 기분을 상하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괜찮지만 정말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욕은 산 정상에서의 외침이나 노래방에서의 열창처럼 마음속 부정적 감정을 분출하는 역할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김한솔 기자 kimhs@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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