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 손실 부담 조건 추가된 수정안 최종 승인

키프로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또한, 지중해의 빼어난 경관으로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 아름다운 키프로스가 금융 위기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리스 경제위기 여파 몰아친 키프로스


2008년 유로존 진입 후, 유로화를 사용하게 된 키프로스는 세제혜택을 통해 국외자금을 유치하는 성장전략을 추구했다. 개인 정보를 철저히 보장하고, 높은 이자를 제공한 키프로스 은행은 곧 호황을 맞았다. 높은 이자와 돈세탁을 노린 러시아 투자자들이 순식간에 키프로스로 몰린 것이다. 2011년에는 은행 자산이 자국 GDP의 8배 이상으로 늘어날 정도로 키프로스의 금융 산업은 크게 발달했다. 경제의 황금기를 누리던 키프로스가 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일까? 주요한 원인은 키프로스가 금융산업의 발달로 얻은 막대한 자금을 발행액이 적은 자국 국채 대신 그리스 국채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키프로스의 인구 80%가 그리스인이고, 전통적으로 그리스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것이다. 투자 규모는 날이 갈수록 늘었고, 2010년에는 키프로스가 보유한 그리스 국채가 자국 GDP의 1.6배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당연히 키프로스는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라는 쓰나미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스의 국채 가격은 반토막이 났고, 키프로스는 그 영향으로 45억 유로(약 6조 4000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 이후로도 키프로스의 경제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고액 예금자에 한해 손실금 부과해


현재 키프로스가 국가부도를 면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약 170억 유로 정도다. 막대한 손실로 휘청거리던 키프로스는 지난해 6월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신청 금액은 이미 2,400억 유로를 지원받은 그리스에 비한다면 미미한 규모이다. 또한, 키프로스가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경제 비중 또한 0.2% 정도로 아주 작아서 경제 시장에 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협상은 9개월 가까이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시작된 본격적인 협상에서 구제금융을 주도하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키프로스에 유달리 혹독한 구제금융 조건을 내걸었다. 은행자본확충을 위한 방법에 민간 예금자의 손실 부담을 포함한다는 조건이었다. 자본확충을 위해 모든 예금자에게 일정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이 발표되면서 키프로스 은행의 예금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금을 찾기 시작했다. 키프로스에는 *뱅크런(bank run)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은행이 약 12일간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키프로스 의회는 결국 협상안을 부결시켰다. 한차례 홍역을 치른 후 키프로스 의회는 2위 은행인 라이키 은행의 10만 유로 이상을 예치한 고액 예금자만 손실 금액을 부담한다는 다소 완화된 조건의 수정안을 발표했고, 협상안에 최종 승인할 수 있었다.

다른 금융 위기 국가에 위기감 조성


민간예금에 대해 이자를 부과하는 이번 손실부담 조건은 유로존 은행시스템의 붕괴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키프로스 사태가 집중 조명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예금자에 대한 이자 부과 조건은 뱅크런 사태를 유발하고, 유로존 여타 회원국의 뱅크런으로 쉽게 전이될 수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벌써부터 그리스 등 앞서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국가들도 예금에 대해 부과금을 직접 매기는 방식이 추가로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사태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한 금융위기가 심해지고 있는 슬로베니아와 몰타, 룩셈부르크 등도 구제금융 지원을 받게 되면, ‘키프로스 모델’이 적용될 공산이 크다는 예측이다.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트로이카가 이렇게 극단적인 처방을 하게 된 데에는 구제금융 지원국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구제금융 지원국에서는 지원을 받는 국가가 긴축재정뿐 아니라 다른 강력한 조건으로 자본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승인 된 수정안에서의 조건이 완화되면서 일부 민간 예금자는 손실을 피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 구제금융에서 시작된 민간 예금자의 손실부담은 앞으로 금융위기를 겪는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구제금융 방식에서 새로운 조건의 도입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가진 기자 parkgj@hgupress.com

*뱅크런 :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의 예금인출이 대규모로 발생하는 현상
*트로이카 : 본래 3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유럽의 트로이카는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를 한데 묶어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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