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문과 결합하고 이익 창출도 가능해

“애플사의 DNA 속에는 기술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있으며, 기술은 교양 및 인문학과 결혼하여 우리 가슴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해야 한다.” 2011년 3월,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2 발표회에 등장해 ‘인문학’을 언급했다. 인문학에 주목하는 것은 비단 스티브 잡스 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문학을 필수 교양으로 삼고 있다. 인문학이 위기라는 담론이 제기된 것도 벌써 오래 전 일, 지금 우리는 거대한 인문학의 물결 속에 있다.

위기 속에서 부흥의 발걸음을 떼다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다. 또한, 인간과 인류에 관한 정신과학이라는 백과사전적 정의도 있다. 쉬운 말로는 ‘사람에 관한 학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1980년대 우리나라는 뜨겁게 정치와 사상 등을 논하던 인문학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하며 실증주의와 성과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이내 자취를 감췄다. 인문학의 위기는 취업전선으로부터 냉대, 극단적인 전문화 등 그 이유가 다양하다. 단편적인 예로, 대학에선 인문학 강의가 사라져가고 서점에는 인문학 책의 재고가 쌓여 갔다. 이렇게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 인문학은 곤경과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2013년 지금, 사람들은 또 인문학에 집중한다. 아직 인문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오지는 않았지만, 현재 인문학이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은 옳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 직장인들은 동양고전에서 처세술을 배우고, 경영인들은 인문학적 지식과 가치를 통한 성공을 이야기한다. ‘CEO가 존경하는 CEO’라 불리는 교세라의 명예회장 이나모리 가즈오가 그 대표적인 예로 알려지면서 경영에도 인문학 붐이 일었다. 하지만 현대 인문학에 대한 또 다른 쟁점도 있다. 인문학의 부흥은 일시적일 뿐 순수학문으로서 인문학은 여전히 위기라는 주장이다. 최근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 학문 자체에 관한 연구나 발전보다는 다른 학문과의 결합 또는 이익 창출 관점에서 인문학을 이용하는 것에 더 치중된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인문학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 다른 것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더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싸우는 인문학> 우리 시대의 인문학이란


인문학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위치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 있다. ‘싸우는 인문학’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인문학에 대한 25가지 질문에 대한 인문학자 22명의 생각이 담겨 있다. 각 인문학자는 안철수, 심리학, 동양고전, 성폭력, 영화 등의 소재를 이용해 실증적 접근으로 인문학을 풀어낸다.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25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팔리는 인문학’(1부), ‘잃어버린 인문학’(2부), ‘싸우는 인문학’(3부), ‘가능성의 인문학’(4부), 네 가지의 주제로 분류된다. 이 네 가지 주제는 인문학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부 ‘팔리는 인문학’은 풍요로움 속의 빈곤을 상징하는 듯한 인문학의 현재를 보여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팔리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순수학문이 아닌, 다른 기술이나 학문 등에 결합하여 이용되는 인문학에 대해 고찰한다. 이어지는 2부 ‘잃어버린 인문학’은 수십 년 전 사회과학 열풍 뒤에 위기를 맞은 인문학과 정신 분석의 영역에서 경계를 다투는 심리학과 뇌과학의 싸움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를 다룬다. 3부는 ‘싸우는 인문학’으로 인문학이 때로 칼보다 날카롭고 폭탄보다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인문학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전복하는 무기로써 활용된다. 4부는 ‘가능성의 인문학’이다. SNS의 영역에서 인문학의 발전 가능성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또한, 기존의 역사관이 아닌 새로운 한국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전통적인 가치관의 부흥과 재해석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지금 대한민국 인문학은 위기와 부흥,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기로에서 인문학은 ‘쓸모없는 학문’, ‘탁상공론’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인문학은 지금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박가진 기자 parkgj@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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