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부를 누렸던 중인 통역사, 역관에 대하여



12월 5일은 ‘무역의 날’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5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것을 기념해 기존 11월 30일에서 올해부터 변경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반도라는 지리적 이점으로인해 일찍이 고조선 때부터 이웃나라들과 활발한 교류 및 교역을 지속해왔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무역은 크게 위축됐다. 그런데 이 때 무역상으로 활약한 의외의인물들이 있다. 바로 역관(譯官)들이다.

허생전의부자 변씨가 실존인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허생의 이야기는 흔히 소설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이 이야기는 박지원이 북경에서 귀국하던 길에 옥갑이라는 곳에서 유숙하며 윤영이라는 노인에게 들은 야사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성 제일의 부자 변씨는 실존인물이자 후에조선을 대표하는 거부가 된 역관 변승업의 조부다.


변승업은 어떻게 막대한 부를 축적 할 수 있었을까? 조선은외교적 필요성에 따라 태조2년(1393) 사역관을 설립하고한어, 몽고어, 일본어, 여진어 4개 분야의 역관을 양성했다. 외교업무만 담당하던 역관들이 국제무역상으로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독점적으로 사무역의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사무역(私貿易)이 금지됐던 조선에서는 사행 인원들에게 출장비 대신 인기 품목이었던인삼의 무역권을 줬다. 조선 초에는 사행 1인 당 인삼 10근을 여덟 포로 나눈 것으로 수량을 제한했으나 인조 후반에는 팔포(八包)제도를 통해 휴대량이 80근으로 대폭 늘어났다. 또 조선 정부는 사행의 공무역(公貿易)을 위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역관들이 물품 구매를 담당하도록 했고, 이를위해 공금을 제공했다. 여기에 당시 각 관아들에서 필요로 하는 중국 물품의 수입을 위해 지방관리들은역관에게 은을 대여해 줌으로써 역관들은 자본이라는 날개까지 달게 됐다. 청나라는 해금(海禁)정책을 썼기 때문에 일본과 직접 교역할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역관들은 무역 결제 수단인 은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다시청에서는 은을 이용해 사치품의 일종인 백사와 비단을 수입해 일본에 되파는 중개무역의 방식으로 이득을 취했다. 기록에따르면 1670년 청에서 수입되던 백사는 100근 당 은 60냥이었던 데 비해, 수출가는160냥으로 거의 2.7배에 달하는 이윤을 남겼다.

역관에게찾아온 위기


이렇듯 부를 독점했던 역관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숙종 10년(1684), 청이 일본과 직접교역을 시작한 것이다. 청일 간 직접 교역이 이뤄지면서 청나라의 비단 값이 올랐고, 조선은일본에서 유입되던 은이 두절되면서 은을 마련할 방도가 없는 이중고에 처하게 됐다. 은의 부족으로 인해관아에서 역관들에게 은을 대여해주던 관행도 사실상 금지됐다. 설상가상으로 숙종 33년(1707) 사상(私商)들의 대청 무역이 부분적으로 허용됨에 따라 역관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이에조선 정부는 관모의 전매권을 역관에게 주는 관모제(官帽制)를도입하기도 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영조 50년(1774) 도입한지 16년만에 폐지했다. 어려움에 처했던 역관들은 18세기 중반 홍삼이 개발되고 정조 21년(1797) 홍삼무역이 공인되면서 다시 그들의 경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당시 역관들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정책들은 이후 근대사회 진입의 밑바탕이 될 신흥 상업세력의 육성과 국가의 안정적인 재정확보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기도했다.

이화여대 백옥경 사학과 교수는 “역관들이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은 당시 열악했던 그들의 경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사대부는 상역(象譯)이라며 폄하했지만 역관들의 경제활동은국내의 상업과 경제활동에 자극을 주어 조선후기의 상업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고 말했다. 역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조선 후기 개화에 앞장서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들로 경직된 사회를변화시키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김호민 기자 kimhm@hgupress.com


*참고문헌: 이덕일 『조선 최대 갑부 역관』(김영사, 2006),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전문가의 일생』(글항아리, 2010), 최광식 외 『한국 무역의 역사』(청아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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