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폭등은 2004년 상반기에 있었던 국제 경제의 큰 이슈 중 하나이다. 더욱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로부터 ‘고유가가 장기화 될 경우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을 것 같은 나라’ 중 하나로 꼽혔으며 실제로 석유를 다량 사용하는 운수 업체, 철강 업종, 화학 업종 등은 이미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거침없이 오르는 유가 상승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며 앞으로의 유가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향후의 결과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할까.

유가 상승은 무엇보다도 중동지역 상황의 불안정에 기인한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도자 살해, 부시의 이라크 정책 실패와 주권 이양 뒤에도 끊이지 않는 이라크의 혼란,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라크 게릴라 세력들의 송유관 테러,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의 내부 소요 사태 등 극도로 불안한 이 지역들의 정치적 상황은 계속적인 유가 상승을 초래했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경제가 발전되리라 예상되는 국가들의 엄청난 석유 수요 때문인데 이들 나라의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성장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세계 제일의 인구 대국일 뿐더러 경기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대단위 공장 및 주택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으니 가히 원자재 파동의 주범이라 불릴 만 하다.

세 번째로는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의 결속력 강화로 인한 생산량 감축이다. 1980년대에는 OPEC의 일부 회원국들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려고 생산 쿼터 감축합의를 깨는 일이 되풀이되었고 원유가격의 약 50%가 폭락하는 등 공조체제가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이 나타났었다. 하지만 98년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석유 수요의 급감으로 위기감을 느낀 OPEC은 목표 유가제(배럴 당 22∼28달러 선을 유지)를 도입, 합심하여 생산량 쿼터를 조정했으며 생산량 감축에도 불구, 더 큰 수익이 나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더욱더 결속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네 번째로는 석유의 양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해산 브렌트유(영국 북해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서부 텍사스 중질유(미국의 서부텍사스에서 뉴멕시코에 이르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서서히 메말라 가고 있으며 사우디 아라비아도 앞으로 20여년 뒤에는 고갈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돌고 있다. 아직 발견치 못한 카스피 해와 시베리아 지역의 석유까지 다 사용한다손 치더라도 오래 써야 60년 정도밖에 더 못 쓴다 하니 자원의 유한성, 희소성을 빌미로 가격을 높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밖에도 석유 회사들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재고량 감소, 헤지 펀드(hedge fund, 개인이나 기관 투자가들로부터 모은 돈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증권 및 외환시장에 투자, 단기이익을 올리는 민간 투자기금)에 의한 투기 요인, 러시아의 거대 석유 기업 유코스 회장의 구속 사건과 회사 파산 위기에 따른 불안 심리 고조 등이 유가 상승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갖가지 요인들이 맞물린 결과, 8월 20일까지 서부 텍사스 중질유는 배럴당 가격이 49.27 달러,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44.59 달러, 중동산 두바이유(아랍에미리트 연방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배럴 당 41.27 까지 치솟았는데 그나마 8월 22일쯤부터는 유가가 서서히 낮아지는 추세에 있어 일단은 한 시름 놓은 상태이다.

폭등하는 유가에 대해 다행히도 IEA(국제 에너지 기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 이유로는 우선 석유의 수급량은 예전의 유가 안정 때와 다르지 않은데 전쟁, 테러 등 심리적 불안 요인으로 인해 그간의 유가 급등의 공포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유가 상승의 불안감이 기우였다는 것을 직접 소비자들이 확인하고 OPEC 회원국들의 설비 투자가 늘어나 산유량이 증가한다면 유가는 적어도 과거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들의 예측이다. 또한 지금의 고유가 현상이 1970, 80년대의 오일 쇼크와 비견되는 것에 대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 측에서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본다면 현재 유가는 2차 오일 쇼크 때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며 위기가 아님을 확인 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 무조건적으로 의지, 안심하고 석유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유가는 한 두 가지 요인이 아닌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며, 전문가의 예측은 유코스 사태나, 이라크 테러 등의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전문가들의 예측이 현실에서 맞아 떨어진다 할 지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석유 자원의 한정성은 필연적으로 유가 상승을 불러오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의 상당 부분을 석유에 의존하는 우리 나라는 당장의 임시방편적 대책을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거시적인 안목 하에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

국가적인 노력에 앞서 우선적으로 국민 개개인 각자가 지금부터라도 시행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소비 절약이다. 유가 급등이 국가적 차원에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스스로가 정확히 이해하고, 시민 단체와 국가 에너지 단체의 적극적인 협조와 주도 하에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기업체들 또한 최근 들어 에너지 절감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지난 8월 25일 전국 경제인 연합회 주최로 '기업의 기술 및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에너지 절감'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명회를 치렀는데 타의 모범이 되는 SKC와 대한항공, 삼성 에버랜드가 각각의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절감방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점진적으로 석유 의존도를 줄여가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러시아로부터 안정적 천연 가스 도입은 수입처 다변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LNG와의 경쟁을 통한 경제성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적은 연료로 먼 거리를 주행할 수 있는 디젤 자동차와 전기와 휘발유를 동시에 사용하여 휘발유 소비량을 줄여주는 하이브리드카는 약간의 단점 보완과 기술 발전이 있으면 얼마 안 있어 석유 절감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태양력, 풍력과 같은 무한 에너지는 전력 설비 작동 부분에 있어서 서서히 그 가치가 입증되고 있으며 이 부분에 사용되던 석유는 운송 수단, 석유 화학 등 보다 많은 석유를 필요로 하는 곳에 집중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자원 개발의 확대와 산업 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 구조로 전환하는 방법은 해외 자원 개발의 경우 기술적인 위험 부담 때문에, 산업 구조 전환의 경우는 경제 전반과 관련돼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실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위에서 언급한 임시 방편적 대책이 아닌 장기적인 대책이란 바로 이 방법들을 말하며 충분한 노력과 투자, 그리고 제품 전반의 고부가 가치화와 생산성 향상을 통한 비용 흡수가 선행될 때에야 비로소 이들은 현실화 가능한 목표가 될 것이다.

지인수 기자 ultra19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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