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 빛을 보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즐겨 듣는 CCM은 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에 참전 중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어 반전 시위와 인권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면서 혼란스런 상황은 극에 달했다. 종전 후 황폐해진 사회를 보며 격분한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비난하며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히피문화에 빠졌다. 이들은 술과 마약에 중독됐고, 반사회적인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 중에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젊은 크리스천들이 있었다. 이들은 예수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부흥회를 주도했다. 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찬송의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당시 유행하던 록음악을 찬송에 접목하는 단순한 시도였다. 하지만 예상 외로 당대 젊은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첫 시도는 1964년 미국의 레이 랩(Ray Repp)이 성당에서 선보인 포크 미사였다. 기존 교회보다 개방적이었던 캘리포니아 갈보리 교회가 CCM을 적극 수용하면서 CCM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당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래리 노먼(Larry Norman)의 이라는 앨범이 있다.

대중들에게 다가서는 CCM

기성 교인들은 복음 찬송가를 제외한 새로운 기독교 음악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언론매체들이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의 인식은 점차 바뀌었다. 1971년 갈보리 교회는 마라나타 뮤직(Maranatha! Music!)이라는 음악 선교단체를 설립해 앨범을 발매했다. 첫 앨범인 에는 초창기 CCM 가수들의 음악이 수록됐다. 1972년 여름에는 첫 CCM 집회인 “엑스플로 72” 대회가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열렸다. 이곳에는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CCM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줬다. 이후 라디오 방송에서 많은 곡이 전파를 탔고, 유명 팝 스타들이 기독교 음악계로 전향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CCM은 팝 음악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장르도 록에 국한되지 않고 랩, 헤비메탈, 펑크, 재즈 등으로 다양해졌다. 1985년, 처음으로 음반 시장에서 CD 앨범이 선보였고 기독교 대학교에서는 이와 관련된 학과를 개설했다.

세계와 한국으로 퍼지다

80년대 말, 미국의 CCM은 유럽으로도 흘러갔다. 1989년 소련에서 ‘에스토니아 89’ 공연이 열렸다. 1991년 스위스에서는 유럽 각국의 기독교 예술인들이 모여 앨범 <첫 발자국 LE Premiere Pas>을 발매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유럽에서 CCM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각국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아시아권에도 소개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CCM에 대한 관심은 두드러진다. 국내에선 미국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가스펠로 처음 소개됐다. 가스펠은 연예인 교회와 기독교 관련방송 등을 중심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성욱, 최안순이 부른 곡 <사랑>은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식으로 CCM이 알려진 계기는 90년대 후반 CBS의 라는 전문 음악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후 <예수전도단>, <한국컨티넨탈싱어즈> 등 음악 선교단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찬양예배사역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현재는 <어노인팅>, <마커스>, <디사이플즈> 등 수많은 선교단이 사역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천관웅, 소향, 박종호 등 여러 솔로 가수들도 활동 중이다.


박경록 기자 parkkr@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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