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생각하는 집, 사람을 사랑하는 집

웰빙(Well-being)이 사회적 코드로 떠오르면서 건강하고 윤택한 삶은 많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의 흔적은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이중환의 ‘택리지’가 바로 조선식 웰빙을 대표한다. 그가 생각했던 살기 좋은 곳의 조건들은 지리(地理)와 산수(山水), 생리(生理), 그리고 인심이었다. 자연적 요소와 인문적 요소를 모두 고려했던 우리의 조상은 그 결과물로 ‘한옥’을 우리에게 남겼다.
한국에 있고 지붕이 기와라는 이유만으로 한옥이 될 수는 없다. 한옥은 한여름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낮잠을 즐길 수 있는 대청마루(이하 마루)와 혹한의 겨울날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구들(이하 온돌)을 고유한 특성으로 가진다. 북방의 폐쇄적인 온돌과 남방의 개방적인 마루의 상반되는 구조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한옥이라 불리는 것이다.



한옥의 원형질, 온돌과 마루
한옥에는 온돌을 들인 방과 대청마루가 나란히 있다. 한옥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자글자글 달아오른 온돌방에 문풍지까지 발라 거센 바람이 못 들어오게 하면서 겨울을 안온하게 보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전통 가옥에선 온돌 대신 *다다미를 깔아, ‘이로리’라는 화덕으로 방바닥을 데운다. 방 안에서 땐 화덕의 연기를 빼려면 문을 열어놔야 했던 그들은 한겨울을 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한옥의 마루 또한 굉장히 독특하다. 나무판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끼워 못을 쓰지 않고 짜낸 ‘우물마루’는 못으로 고정시킨 다른 나라 전통 가옥의 마루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보기에도 깔끔하다. 나무 판들을 끼울 때 정확히 들어맞게 하기 위해, 판의 폭을 처음에는 넓다가 갈수록 좁게 한 것에서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기단, 그리고 대들보와 서까래
가옥 아래에 흙이나 돌로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기단은 비가 들이칠 때 가옥 내부의 습기와 침하를 막아 준다. 한 단을 외벌대, 두 단을 두벌대, 세 단을 세벌대라고 하는데 격이 있는 한옥의 경우는 반드시 세벌대를 한다. 마루에 앉으면 지붕을 받쳐주는 굵은 대들보와 천장과 처마를 형성하는 조밀한 서까래들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천장을 ‘연등천장’이라고 한다. 아파트의 평평한 천장에 비해 한옥의 천장은 산봉우리처럼 각이 져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천장과 지붕 사이엔 더그매라고 불리는 조그만 공간이 있다. 여기에 우물마루를 깔고 창문을 달아 습기가 차지 않게 해, 생활용품을 보관한다.

창호지문
‘비단은 오백 년 가고 종이는 천 년 간다’는 말이 있다. 들기름 먹인 한지는 비닐보다 더 질기고 햇빛 투과율이 45%에 이르기에 한옥의 창호지문에서 그 빛을 발한다. 창호지문을 만들 땐 방 안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격자무늬, 세살무늬, 완자살무늬 등 다양한 무늬를 가지고 나무창살로 된 문에 한지를 바른다. 투명유리가 아닌 한지를 통해 비쳐 들어오는 햇살은 강렬하지 않고 은은해, 방을 한층 차분하고 아늑하게 만든다. 창호지문은 또 통풍에도 유리해 미세한 구멍으로 환기와 온도, 습도까지 조절한다. 뿐만 아니라 열전도율이 낮아 단열효과가 커서 창호지 이중창문이면 웬만한 겨울날도 거뜬하다. 이렇듯 ‘외유내강’을 보여주는 창호지문은 한국의 멋이다.


마당에 깔린 조상의 지혜, 백토
한옥의 마당에는 화초나 나무를 심지 않고 대신 백토를 깔아놓는다. 백토에 반사된 햇빛은 처마가 깊어 직사광선이 비치지 않는 가옥 내부를 밝게 해준다. 직사광선이 얼굴에 바로 비치면 그림자가 생겨 괜스레 표정이 어두워 보이거나 슬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이 반사된 빛은 사람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지 않아 매 순간 마음속에 간직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게 해 준다.
백토는 또한 대류현상을 일으켜, 한 여름에도 사랑채에 시원한 바람이 불게 한다. 숲에서 온 찬 바람은 더운 마당 쪽으로 불고, 마당에서 생기는 뜨거운 바람은 숲 쪽으로 분다. 찬 바람과 뜨거운 바람이 만나는 곳이 바로 마당의 백토인데, 이곳에서 두 바람이 대류작용으로 회오리를 일으킨다. 이렇게 회오리로 강해진 찬 바람이 사랑채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한옥은 입구에서부터 그 끝까지 사람을 향해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더불어 자연을 만끽하게 해준다. 한옥이 가지는 조화와 은은함, 그리고 그 격을 우리 삶에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다다미: 일본에서 사용되는 전통식 바닥재를 말한다. 속에 짚을 5cm 두께로 넣고 위에 돗자리를 씌워 꿰맨 것으로 직사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윤혜 기자 leeyh@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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