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순간, 마음 속에 간직한 것들을 우리 앞에 내놓은 그들
‘영국 현대미술’하면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당장에 ‘yBa’(young British artists) 혹은 ‘데미언 허스트’가 생각난다면 세계 현대미술의 변화에 제대로 반응한 것이다. yBa는 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말한다. ‘영국의 청년 작가들’이라는, 국적과 세대만을 나타내는 단순한 이니셜이 하나의 고유 명사가 되어 널리 알려졌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들의 탄생은 세계적으로 영국 현대미술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고, 전세계 현대미술의 지형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지금부터 그 ‘yBa 신화’의 주역들을 만나보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라 루카스의 <벌거숭이>, 트레이시 에빈의 <1963년을 기억하며>, 매튜 스몰의 <작품>
전설의 출발점 ‘프리즈전’과 세계를 뒤흔든 ‘센세이션전’
yBa의 탄생은 1988년 7월로 거슬러간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예비 예술가들은 당시 신인 작가들에게 인색했던 풍토에 맞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대신 DIY(Do It Yourself) 정신으로 모여 ‘프리즈(Freeze)전’을 열었다. ‘프리즈전’은 전시 형태나 작품 내용면에서 아직 파격적이거나 센세이셔널한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전시가 yBa의 출발점이 된 것은 기획 전반에 나타나는 작가들의 ‘새로운 태도’에 있었다. 이들은 예술가의 고상한 이미지를 버리고 전시장 섭외 및 작품 구성은 물론, 홍보까지 직접 발로 뛰면서 이뤄냈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1997년 가을 약 100일간 영국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센세이션(Sensations)전’은 개막 전부터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참여 작가 대부분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30대 초반의 신예작가인 데다가 이들의 작품이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미술기관에서 선보인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 중 사라 루카스는 정형화 된 여성작가의 이미지를 화끈하게 뒤집었는데, 그의 작품 <벌거숭이>(1994)는 남녀의 성기를 연상시키며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성적 충동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한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센세이션전’은 선정성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막강한 컬렉터의 후원과 제도기관의 승인에 힘입어 yBa가 미술계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됐다. 데미언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게리 흄, 줄리안 오피, 크리스 오필리 등은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고 몇몇은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 중이다.
사회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yBa 2세대까지
일각에서는 yBa가 ‘센세이션전’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그들의 정신이 처음과 달리 타락했다고 평가했다. 그들의 성공 뒤에 yBa의 대부 찰스 사치(Charles Saatchi)가 있었기 때문인데, 뉴욕 화랑가에서도 ‘큰 손’으로 불리던 그가 yBa작가에게 미친 영향력은 단순한 후원 이상이었다. yBa는 젊은 피의 수혈을 요구하는 미술시장과 사치의 개인적인 의도가 만들어낸 거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속물적인 취향을 가리켜 의도적으로 엘리트주의를 배척했다고 판단하고,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 영국의 문화적 저력을 확인시켜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yBa 작가들은 대체로 이러한 논란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고, yBa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yBa 2세대 작가들은 정치적 무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1세대와는 다르게 그들의 자유로운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또렷하게 나타낸다. yBa 2세대 작가인 메튜 스몰은 영국의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을 대변해 자동차의 폐부품, 부서진 세탁기 등을 캔버스 삼아 그 위에 유성물감과 광택제로 그림을 그린다. 일반적 작품 도구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기성 질서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외에도 2세대 작가로는 헨리 프리스, 대런 아몬드 등이 있다.
‘yBa 신드롬’이 세계 미술계를 들썩이게 한 지 10여 년이 흘렀고, yBa라 불리는 작가들의 등장으로 세계 미술시장의 판도는 뒤집혔다. 이들이 없었다면 대형 미술관들은 유럽 대가들의 명작만을 전시하며 대중과 거리를 뒀을 것이며, 화랑에는 명성 있는 뉴욕풍 미술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이들만이 넘쳤을 것이다. 아직도 영국의 현대미술은 진행형이다. 주류-비주류의 경계를 허물고 스스로 새로운 창조자가 된 영국 현대미술은 지금보다 더 주목 받을 가치가 있다.
이윤혜 기자 leeyh@hgu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