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을 통해 드러나는 이중적 아름다움

흔히 인류 역사상 문화가 가장 부흥했던 시기로 르네상스를 꼽는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종교화가 신앙심의 근원인 동시에 위엄과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위선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위선’으로 가득 찬 시대에 대항하며 바로크 시대의 문을 연 카라바조(Caravaggio, 본명 Michelangelo Merisi, 1571~1610), 그는 39년의 짧은 생애 동안 어떤 화가보다도 귀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 화가이다.



드러냄과 숨김 사이, 그 아름다움

카라바조라는 이름은 그 아버지의 고향 이름으로, 앞서 활동한 유명한 화가 미켈란젤로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밀라노에서 태어났으며, 6살이 되던 해 전염병으로 아버지를 잃고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한다.

<병든 바쿠스 신>은 그의 초기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선 르네상스 시대에 화려한 장식과 더불어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던 주신(酒神) 바쿠스가 손톱에 때가 낀, 병든 시골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제 막 로마에서 활동을 시작한 시골 출신의 무명화가 카라바조는 이 작품에서 병들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림 속 청년의 노출된 어깨와 시선은 관람객의 시선을 유혹하는듯하지만 몸을 웅크린 자세는 방어하는 듯하다. 관람객은 그의 드러난 상반신과 어둠 속에 사라져가는 시선을 통해 드러냄과 숨김 사이, 카라바조의 그림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종교화의 새 시대를 열다

<그리스도의 매장>은 발리첼라의 산타 마리아 성당 정면에 걸릴 제단화로 그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종교화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구도를 따랐으며, 당대 성직자들로부터 그의 최고 걸작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화면 전체를 감싼 캄캄한 어둠 속, 예수의 시신을 관 속에 눕히고 있는 요한과 니고데모, 성모 마리아와 다른 두 마리아가 대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작품 역시 서민적 모델의 사실적 묘사나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 등 카라바조 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특히 비통해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화면 오른쪽에서부터 예수의 시신 위로 쏟아지는 한 줄기 빛, 이 빛을 통해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 기법이 효과적으로 살아나며 화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카라바조는 <그리스도의 매장>으로 엄청난 명성과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가 운명을 다하고 17세기 바로크 시대가 도래하고 있던 그 무렵의 경계선에서, 종교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가톨릭이 요구했던 반종교개혁의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미술양식을 구축해 나갔다.

자신을 응징한 슬픈 자화상

하지만 카라바조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작품인 <성모의 죽음>이 인수를 거부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람됨에 대한 분노까지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림 주문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의 광포한 행동은 날로 심해졌다. 1606년 5월에는 내기 테니스 경기를 하다 싸움이 나 상대방을 칼로 찔러 죽이고 본인도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도망자 신분의 카라바조가 나폴리에서 그린 마지막 작품이 바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다. 이 작품에서 카라바조는 승리자 다윗을 새롭게 해석하여 슬픈 듯 무심한 표정으로 그려냈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목이 잘린 골리앗의 흉측한 얼굴인데, 이 얼굴이 그의 자화상이라는 해석이 17세기부터 있었다.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 또한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모델로 했다는 주장도 있다. 자신의 광포한 본성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가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을 자신의 비참한 얼굴(골리앗)을 들고 있는 순진무구한 소년의 얼굴(다윗)과 대비시키며 이중초상을 시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평생 안정된 생활을 누려보지 못하고 떠돌면서 잘 때도 신발을 신고 자는 긴장된 생활을 했던 카라바조. 늘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던 그는 스스로 죽음이라는 벌을 내려서라도 안정과 휴식을 얻고 싶었는지 모른다.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 카라바조에 의해 창시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대비시켜 주제를 부각하는 극적 명암대조법

*김성근, <이중성의 살인 미학 카라바조> (2005, 평단문화사), p.328

정한비 기자 chunghb@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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