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화풍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독창성,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 창조해

가난과 함께 시작된 청색시대

1900년, 스페인의 자신만만한 19세 청년 피카소가 파리로 왔다. 프랑스어도 할 줄 몰랐고 돈도 없었던 그는 비슷한 처지의 예술가들과 모여 살며 그림을 그렸다. 푸른색은 서양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는데, 마치 파란 셀로판지가 덮인 것처럼 푸른 계열로 채색된 이 시기 그의 그림들을 피카소의 ‘청색시대’라고 부른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특징이 그가 겪은 친한 친구의 불행한 죽음, 우울하고 고통에 찌든 빈민들, 조국 스페인의 혼란한 사회, 그리고 이국에서 그가 경험한 극도의 가난과 우울증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나 피카소가 다른 화가들보다 유난히 더 청색 계열을 고집한 것은 푸른색 계열의 색깔만으로도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청색시대는 피카소가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약 3년 반 동안 계속된다. 이후 약 2년 동안은 점차 청색시대에서 ‘분홍색시대’로 이행하는 특징을 보였으며, 1907년 문제작 <아비뇽의 여인들>이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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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의 여인들>과 입체주의

처음 <아비뇽의 여인들>은 동료들로부터 혹평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예술가 사회에서 널리 회자됐다. 기존에 당연하게 통용되던 자연주의적 색채, 원근법, 빛의 일관된 반사를 모두 무시했다. 여러 각도에서의 시점이 하나로 통합됐고, 조형적인 느낌도 은근하게 품고 있었다. 또한 아프리카 원시 미술의 표현법도 섞였는데, 이 모든 것이 당시 화풍과 전혀 달랐다. 이러한 특징들은 당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고, 피카소는 이 작품을 계기로 입체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대표적인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들은 초상화인 경우가 많다. 초상화의 기본은 다빈치의 <모나리자>같은 세밀화였으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고정관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이르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난해해졌다. 나중에 피카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위의 흔한 재료들을 날로 붙여 구체성을 부여하는 표현법, 즉 콜라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오늘날 콜라주는 낯선 기법이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물감으로 화면을 채우지 않은 것은 ‘회화의 모독’이라고 여겨졌다. 이후 1914년을 즈음해 피카소는 다시 고전주의로 돌아갔고 초현실주의적인 그림들도 다수 그렸다.

예술사에서 가장 정치적인 작품

<게르니카>를 그리기 전까지 피카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미술을 그만두고 성악을 하겠다고 말하는 등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여기에 복잡한 사생활 문제까지 겹쳐 상대적으로 미술 활동은 뒷전이었다고 한다. 우울증에 빠져 혼란스럽던 이 시기, 조국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장군과 공화파의 내전이 점점 더 격화됐다. 본래 자유주의자였던 그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지원하는 프랑코에게 적대적이었다.

1937년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할 벽화 작품을 의뢰 받은 피카소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도시 게르니카가 독일 전투기들로부터 무차별 폭격을 당해 시민 대부분이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곧바로 <게르니카> 스케치에 들어가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가로 7.7m, 세로 3.5m가 넘는 이 거대한 벽화에 대한 반응은 요란했다. 그림이 담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지 때문이다. 1951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도 비슷한 그림이다. 두 작품 모두 전쟁의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과 어린이로 그려졌다.

화가로서 피카소는 당대의 주류 화풍에 얽매이지 않은 그림을 많이 그렸고,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따라서 특정 화풍을 대표하는 화가로 한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보통 현대미술가로 분류한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영나 교수는 피카소와 현대미술의 관계에 대해 “피카소 미술에 대한 이해는 현대미술로 들어가는 지름길과 같다. 왜냐하면 피카소 이후의 많은 미술가가 직접적으로는 그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고, 간접적으로는 그의 자유로운 실험정신에서 정신적인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방가르드: 예술, 문화 분야에서 새로운 경향이나 운동을 선보인 작품이나 사람을 칭하는 말. 한국어에서는 전위(前衛)로 번역됨. 대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경계를 허무는 표현으로 쓰임. 선구자 또는 선발대.

장미쁨 기자 jangmp@hgupress.com

그림A_피카소.jpg

그림B_피카소.jpg

그림C_피카소.jpg

그림D_피카소.jpg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맹인의 식사>, <아비뇽의 여인들>,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 <게르니카>.

그림은 4가지가 들어갈 예정인데 위와 같은 형식으로 기사 오른편 위에 위치. 그림C가 유난히 가로가 긴 그림이라서 이렇게 배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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