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압력 속에서 끝끝내 거부했던 주권 이양

구한말 일본은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한-일 의정서(1904년), 한-일 협약(1904년), 을사조약(1905년 11월 18일), 한-일 협약(1907년), 그리고 한일병합조약(1910년 8월 22일)을 감행했다. 특히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을 통해 독립주권국가로서의 지위가 사라졌고 한일병합조약은 그 법적 형식을 완료했다. 이 두 조약은 약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국제법에 위배되느냐 아니냐는 논란이 되고 있다. 한일병합조약 100주년을 맞아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조약의 불법성에 대해 알아봤다.



을사조약은 조약이 아니다?

법리상 을사조약의 효력을 판단하려면 조약의 성립 여부와 하자 없이 체결돼 효력을 가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을사조약은 조약성립요건을 만족하지 못하므로 ‘조약’으로 부를 수 없다. 조약의 성립요건으로는 ▲당사자 ▲목적 ▲의사표시 존재 ▲조약성립절차의 완료를 들 수 있다. 이 중 을사조약은 조약성립 절차의 완료에 문제를 안고 있다. 조약 성립절차는 일반적으로 교섭, 조약본문채택, 조약본문 인증, 조약 구속력 발효에 대한 동의, 비준서 교환으로 이뤄지는데 을사조약의 경우 양국 조약 체결권자의 비준이 없다. 을사조약의 성립을 위해서는 고종황제의 비준이 있어야 하는데 고종황제의 비준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조약의 효력요건을 보더라도 ▲당사자에게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조약을 체결하는 기관에 조약체결권이 있어야 하며 ▲조약체결권자의 의사표시에 하자가 없어야 하고 ▲조약의 목적이 실현 가능하고 적법해야 효력이 생긴다. 을사조약은 하자 없는 의사표시의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조약본문의 인증을 받기 위해 일본은 대한제국의 국가대표인 고종황제와 각료들에게 압력을 가했으며 무력시위도 감행했다.

한일병합조약은 성립하지 않았다

을사조약과 달리 병합조약은 격식을 갖추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위임, 조인, 비준 단계를 설정해 완전한 형식을 갖춘 위임장을 남기는 등 일본은 한일병합조약의 합법성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대표의 자격 문제 ▲비준과정 결여로 인한 불성립 ▲순종의 고종 승계성 불투명의 문제를 가진다. 병합조약의 양국 대표로 한국 측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일본 측은 데라우치 통감을 대표로 세웠다. 그런데 통감은 일본측 대표가 될 수는 없다. 통감은 대한제국에서 법령 제정, 행정처분 승인, 한국 고등관 임면 동의 등 실질적인 국왕으로 권한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일본 전권 대신의 대표자격에 분명한 하자가 있다. 병합조약은 황제의 안건 결재가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데 이 조약에서 양국 황제의 비준은 생략되고 병합조약 8조에 ‘양국 황제의 재가를 거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황제의 위임을 받은 전권대표의 합의만으로 병합조약이 효력을 가지지는 못한다. 또한 병합조약을 공포하는 조칙에 순종의 친필 서명이 빠져 있다. 이는 순종이 이 조칙을 못 본 채 공포했거나 안건 결재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순종이 고종의 뒤를 잇는 황제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이 고종황제에게 양위를 할 것을 요구했지만 고종황제는 양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군국대사를 대리’시킨다는 조칙을 발표했다. ‘대리’하는 것을 양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이 거행한 양위식에도 당사자인 고종과 순종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고 내관 2명이 대리하는 형태로 치러졌다.

과거 우리나라가 조약의 불법성을 제기하는 일방적인 형태와는 다르게 요즘에는 한일 양국의 학계 간의 교류가 활발하다. 한일 양국이 함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1기, 2기가 활동을 했으며 특히 2기 때는 교과서를 놓고 한일 양국 학자들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양국의 지식인들이 지난 7월 28일 도쿄 참의원(상원) 의원회관 지하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날 양국 학자 1천118명이 한국 강제병합조약이 원천 무효라는 내용의 성명에 서명하는 등 현재에도 한일 양국 간의 견해 차이를 좁히기 위한 여러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서로 다른 형식요건을 갖춘 한국, 일본의 조서가 한일병합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증명하는 자료로 공개되기도 했다.

김세훈 기자 kimsh2@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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