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思), 언(言), 그리고 행(行)

얼마 전, 여러 언론의 보도를 통해 우리나라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한 정치성향 설문조사의 결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의 정치성향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20대를 포함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중도주의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난 1학년 때 수강했던 한 정치학 과목 교수님의 ‘뚝방 이론’처럼, 현 사회에서 발생하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중재로써 균형점에 이르도록 이끄는 중도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나는 자신을 감히 중도주의자라 칭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당신들은 ‘중도’가 주는 무거운 사명과 책임을 알고는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계속되는 사회적, 정치적 갈등 속에서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혹 확고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지나친 현실주의와 개인주의로 인해 마치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양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될 대로 되라’의 ‘나몰라라식’이거나 ‘심판자’가 되어 감시와 정죄의 의도를 가지고 중도주의자를 자청한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 들어, 한동 공동체 안에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본지의 기자들은 기관지 소속 기자로서의 신분과 학생으로서의 신분 등의 이중적 제약으로, 일련의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 한동에서, 우리가 ‘굳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학내 드러나지 않은 불미스러운 일들까지 끄집어내 학우들에게 알리는 이유와 목적은 바로 ‘한동의 변화’를 위함이다. 아직은 어려 미숙한 한동이 조금 더 성숙해지기를, 성장곡선의 변곡점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한동이 재도약할 수 있기를, 썩어 문드러져 곪아버린 한동 깊숙한 곳의 상처가 치유돼 새살이 돋기를, 우리는 진정으로 한동의 변화를 바란다. 하지만 변화의 주축이 되어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할 학우들의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대부분의 학우들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그나마 보여진 잠깐의 반응이라곤 일부 ‘키보드 워리어’들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의미한 설전(舌戰)과 학우들의 쑥덕거림뿐. 괄목할 만한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아 매우 안타까웠다.

지난 2007년 ‘GLS 교수임용 사건’ 때, 마찬가지로 학교는 시끄러웠다. 09학번인 나는 그 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몇몇 선배들은 소수의 일반 학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태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 함께 모여 단체를 결성했다. ‘한소리’란 이름의 이 단체는, 대자보를 붙이고 전단을 배포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행동했다. 결국 그 사건은 한소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한동의 전형적인 방법과 결말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한동을 위해 몸소 나섰던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행동은 이념의 필요조건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이성의 산물인 이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념에 의해, 그 이념을 위해, 그 이념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존재의 성립 요건이다. 우리 사회의 중도, 그리고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한동 공동체의 행동이 쏙 빠진 이념은 이성적인 존재로 보이기 급급해 내세운 허울뿐인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김예슬씨의 대자보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련다" 소신을 따라 행동하는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묘사한 짧은 이 문장이 이토록 강하게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 우리 한번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은 무엇이며 그 행동의 바탕이 되는 이념은 무엇인지, 또 그 이념이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고 목청 높여 외치던 ‘그’ 이념이 맞는지를...

김민 기자 kimmin@hg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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